최근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 폐지 공약을 발표하면서 오랜 논쟁에 다시 불을 붙이고 있다. 지하철 적자 문제를 해결하고 세대 간 차별을 없애자는 것이 취지다. 대신 노인들에게 일정한 액수의 현금을 지급하자고 제안했다. 노인 무임승차 제도를 돈의 관점에서만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는 도입 취지부터 목적에 이르기까지 돈의 문제를 떠나 훨씬 더 깊은 뜻이 있었다. 필자가 지금부터 45년 전인 1979년 이 제도를 건의한 배경은 돈의 문제보다 경로(敬老) 우대 정신이었다. 당시 보건복지부 노인복지 담당 공무원으로 소련에서 열린 국제사회보장협회 회의에 참석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모스크바대 앞에서 어느 할머니가 시내버스를 타면서 돈 대신 하얀 종이를 내는 모습을 보고 현금을 내고 타는 대학생에게 “이 할머니는 어떻게 하얀 종이를 내느냐”고 물어보았다. 노인 우대 정신에 따라 버스 요금을 내지 않는다는 답변이었다. 장관에게 출장 보고를 하면서 우리도 노인을 공경하는 제도를 운영하자고 했다. 전체주의 국가의 복지 제도를 본받자는 것이 아니라 노인을 공경하는 우리의 경로 우대 정신을 살리자는 것이 취지였다.

다행히 제안이 받아들여져 그 이듬해 1980년 어버이날인 5월 8일 노인 지하철 할인 제도가 시작되었다. 그해 4월 11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경로 우대제 법안의 입법 취지를 보면 이 제도의 뜻을 이해할 수 있다. ‘그간 후손의 양육과 이 나라 사회의 발전을 위해 일생을 바쳐온 노인들에게 철도 서비스 요금 할인으로 일상생활상 편의를 제공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전통적 강점인 경로 효친의 인륜 미덕을 기려 물심양면으로 노인복지에 이바지하고자 함.’ 돈보다 국가·사회 발전에 기여한 노인에 대한 경로 우대 정신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노인들이 살아가는 데 지하철 이용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대부분 노인이 도시에 살고 있고 노인 대부분은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지하철은 노인에게 생활 공간 일부가 됐다.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쉽게 외출을 한다. 밤에 잠이 오지 않는 노인들은 새벽같이 일어나 서울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돌고 와서 집에서 아침 식사를 한다. 이렇게 지하철을 이용함으로써 얻는 노인층의 건강 및 생활 편익 효과는 연간 4000억이 넘는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주말에 친구들끼리 모여 지하철로 여행하는 것도 흔한 일이다. 노인의 지하철 이용이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민 갔다가 고국을 방문한 교포 노인들은 지하철 무임승차가 가장 부러운 제도라고 손꼽는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노인을 공경하는 경로 우대 제도를 운영하는 조국이 자랑스럽다는 것이다.

얼마 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우리나라 노인들의 지하철 무료 이용 모습을 크게 다뤘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을 무료로 이용해 의정부를 지나 소요산까지 단풍놀이 갔다 온 이야기, 한여름 냉방이 잘된 지하철 열차 안에서 피서하는 모습 등이었다. 미국에선 전혀 볼 수 없는 이런 풍경을 하나의 생활 문화 현상이라고 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노인 지하철 무료 이용은 하나의 생활 문화가 됐다. 노인층의 지하철 문화도 또 다른 하나의 ‘K컬처’라고 할 수 있다.

노인 지하철 무료 이용에 따른 경제적 논란은 다른 관점에서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노인 연령 기준을 상향 조정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노인을 분류하는 기준을 달리할 수도 있고 그렇게 할 경우 무료 이용자 범위도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노인 지하철 무료 이용 제도를 경제적 관점, 세대 간 차별의 관점보다 훨씬 더 큰 문화적 시각에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