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필자가 조교수 1년 차와 엄마 1년 차를 병행하던 해에 우리나라 합계출생률은 1.2명이었다. 교수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어떻게 이렇게 출생률이 낮으냐’는 말이 나왔는데 필자는 ‘합계출생률이 1이 넘는 게 신기한 것일 수도 있다’라고 했다. 그때만 해도 다른 선진국들처럼 우리나라 출생률도 곧 반등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공감을 얻지 못했다. 이제는 모두가 안다. 우리나라 초저출생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고 합계출생률은 무섭게 감소하여 그 5년 후에 1명 아래로 떨어졌고 지금은 세계 최저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출생률이 낮으냐’라는 질문이 아니라 ‘당연히 낮을 수밖에 없겠구나’라고 공감이 가야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는 대책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젊은 세대가 경험하는 일상은 법안과 정책을 만드는 세대가 경험한 일상과 간극이 크다. 기성세대 직장인 대부분은 오후 1시면 하교하는 초등학생 아이를 퇴근할 때까지 누가 볼 것이며, 아이가 아프면 누가 병원에 데려갈 것인지 고민을 투철히 할 필요가 없었다. 집에 있는 아내가 아이를 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집에 아내가 없다. 생계를 위해서든 자아실현을 위해서든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일을 해야 하고 혹은 하고 싶어 하는 사회가 되었고, 이것은 다른 선진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속도에서 차이가 날 뿐이다. 선진국에서 100년에 걸쳐 나타난 변화가 한국에서는 고속 성장 이후 한 세대 만에 나타난 것이다. ‘내조하는 아내’가 있다는 전제로 운영되던 사회에서 ‘맞벌이 부모’ 사회로의 전환은 우리에게 익숙한 제도와 문화를 뜯어고쳐야 함을 의미한다. 일회성 현금 지원이나 수당 인상이 효과적이지 않은 이유다. 육아 도우미를 고용하거나 부모 중 한 명이 직장을 다니지 않아도 될 만큼 거액의 지원금이 아닌 이상 부모가 일하는 동안 아이를 키울 사람이 없다는 너무나도 명백한 문제는 해소되지 않는다.

부모가 일하면서도 아이를 키울 수 있으려면 직장과 학교, 양측에서의 개혁이 동시에 필요하다. 근로시간 감축과 유연화, 그리고 공공 보육 및 공교육의 양적·질적 확충이 함께 이뤄져야 부모가 자녀를 안심하고 맡기고 일하고, 또 자녀와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정책들이 물론 논의되고 있지만 복잡한 이해관계와 예산 부족으로 추진이 쉽지는 않다.

추진이 상대적으로 쉽더라도 근본적인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먼 정책들은 정리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부모들의 일상에 직접적으로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정책들에 과감히 투자할 때다. 저출생 예산으로 몇백조를 투입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GDP 대비 가족 지원 예산 비중은 OECD 하위권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클로디아 골딘 교수가 말했듯, 부모가 자녀와의 시간을 모두 외부에 맡겨야 한다면(outsource) 애초에 자녀를 낳을 이유가 없다. 부모가 일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자녀와 함께할 수 있도록, 후배들이 맞벌이 부모 선배들을 보고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사회가 변하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