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불과 3일 차이로 ‘지방세특례제한법 개정안’ 2건이 발의됐다. 김용판 의원이 20일, 이헌승 의원이 23일 각각 제출했다. 두 법안은 모두 소형주택 공급 활성화를 위한 것이다. 김용판 안은 글자 수 1238자다. 이헌승 안은 여기에 22글자가 추가된 1260자다. 22글자 외에는 김용판 안과 똑같다. 복제율 98.3%다.
안철수 의원은 2022년 9월 ‘노후신도시 재생지원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이미 유사한 내용으로 7건의 법안이 발의된 상태였다. 안철수 안이 특별히 다른 내용은 없다. 이인영 의원은 2023년 11월 ‘전철1호선 등 철도 지하화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유사 법안 3건이 발의된 후였고 역시 큰 차이는 없다. 이인영 안은 발의 후 불과 55일 만에 본회의를 통과했다.
금년 2월 박진 의원은 한국수출입은행의 자본금을 50조원으로 증액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그런데 이미 25조원으로 늘리는 정성호 안과, 윤영석 안(30조원), 양기대 안(35조원)이 발의되어 있었다. ‘수출입은행법안’이 본회의 통과 후, 4건의 법안은 모두 ‘대안반영폐기’로 처리되어 발의 의원 입법 실적이 1건씩 추가되었다.
강준현 의원이 발의한 ‘조세특례제한법안’은 김태년 의원의 법안에서 ‘송객용역’을 ‘면세점송객용역’으로 용어만 바꾼 것이다. 태영호 의원은 8월 26일을 ‘북한이탈주민의 날’로 지정하자는 법안을 냈는데, 보름 뒤 지성호 의원이 7월 8일로 하자고 법안을 냈다. 출입국 및 이민 관리를 위한 법무부 외청 설립 관련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명칭만 조금씩 바꾸어 이명수 안(이민청), 김형동 안(국경이주관리청), 정점식 안(출입국·이민 관리청)이 발의되었다.
왜 국회는 표절에 관대할까? 법안도 엄연히 창작물이다. 만약 이런 일이 학계나 출판계에서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표절로 판정되어 몰매를 맞을 것이다. 정치권이 표절 자체에 항상 너그러운 것도 아니다. ‘논문 표절’은 고위 공직자 원천 배제 기준에 적용되기도 했다. 인사청문회마다 논문 표절 논란은 단골 메뉴였고, 이로 인해 낙마한 경우도 있다. 그런데, 유독 입법에서는, 법안 표절에 대해서는 너무나 관대하다. 왜일까?
원인은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이 ‘건수’로 평가받는 구조에 있다. 법안 발의를 몇 건, 처리를 몇 건 했냐, 이런 식이다. 시민단체의 국회의원 평가도, 공천을 위한 정당의 내부절차에서도 이런 ‘건수’ 평가가 일반적이다. 그러니 의원 입장에서 법안 발의 ‘숫자’를 늘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법안 표절에 관대한 국회의 풍토는 발의 건수 늘리기에 최적화된 ‘온실’이다.
국회의원들은 법안 표절을 상부상조하는 미풍양속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결과적으로 보면 악습이 분명하다. 첫째, 21대 국회에서 2만5830건의 법안이 발의되고 9455건이 처리되었다. 문제는 처리 법안의 62.7%인 5928건이 ‘대안반영폐기’다. 이는 ‘법안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대안에 반영한 뒤 폐기한 법안’을 말한다. 그런데 ‘대안반영폐기’도 입법 실적 1건이 된다. 바로 여기에 표절 법안이 무더기로 들어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법안들의 처리에 국회의 에너지를 쓰게 하므로 ‘악습’이다.
둘째, 법안 표절이 묵인되는 국회에서는 많은 법안이 발의만 되고 결국 폐기된다. 21대 국회도 현재 1만6375건의 법안이 미처리 상태다. 국회의원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될 운명이다. 만약 22대 국회에서 법안 표절을 금지한다면, 법안 발의 건수는 획기적으로 감소할 것이다.
법안 표절 악습을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 첫째, 가장 중요한 것은 국회의원의 양심이다.
둘째,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 이미 발의된 법안에 대해 수정 및 보완 의견을 가진 의원이 이를 위원회에 서면 제출하여 법안심사 때 함께 논의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의원들이 유사한 법안을 굳이 새로 발의할 필요가 없다. 이는 국회법 개정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22대 국회는 시작부터 뭔가 좀 다른 모습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