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정문의 모습. /뉴스1

대학 입학할 때 전공을 결정하는 기존 학사 제도와 달리 전공 없이 무전공으로 입학한 후 적성과 진로에 맞춰 전공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자유전공’ 제도는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스탠퍼드, 시카고 등 미국 주요 대학이 오래전부터 채택해 온 제도로 1990년대부터 국내 도입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그러나 대학 내 의견 조정의 어려움과 제도 미비 등으로 도입이 미루어지다 2009년 서울대학교가 자유전공학부를 설립하면서 우리나라 대학의 주요 학사 제도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후 2010년대를 거치며 몇몇 대학이 ‘전공 쏠림’ 등의 이유로 자유전공학부를 폐지하면서 존폐 기로에 서기도 하였으나 최근 교육부가 무전공 확대 방침을 발표하며 자유전공 제도가 다시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다.

5월 30일에 발표된 ‘2025학년도 대학 입학 전형 시행 계획’에 따르면 2025학년도 입시에서 수도권 대학과 국립대 73곳이 전체 모집 정원의 약 30%에 달하는 3만8000여 명을 무전공으로 선발할 계획이다. 이 가운데 1만5000여 명은 보건의료계열이나 사범대를 제외한 전공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전공으로 입학한다.

지난 15년 동안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로 재직한 필자로서는 이러한 상황이 반갑기도 하지만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자유전공 제도가 기존 학사 제도의 ‘경직성’을 뛰어넘어 학생들의 전공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장점도 많지만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잘못 운영될 경우, 여러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유전공으로 입학한 학생들이 전공 선택 후 소속을 변경하게 되면 학과 간 입학 성적의 서열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상위권’ 인기 학과로 쏠림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2009년 자유전공 제도를 도입했다 폐지한 몇몇 대학의 사례를 보면 전공 선택 후 소속을 변경하는 상황에서 특정 학과로 과도한 쏠림이 나타났다.

반면 서울대학교의 경우는 전공 선택 이후에도 자유전공학부 소속을 유지하고 자유전공학부 졸업장을 수여했기 때문에 일부 쏠림 현상에도 불구하고 ‘비인기’ 전공을 과감하게 선택하는 일이 가능할 수 있었다. 실제로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학생들의 지난 15년간 전공 선택 경향을 보면 경제학, 경영학, 컴퓨터공학 등 인기 전공으로 쏠림 현상이 일부 있었지만,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의 비인기 전공뿐만 아니라 음악, 미술, 생활과학, 농생명과학 등의 분야에서 학과의 ‘입결’과 상관없이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자기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적성에 맞는 전공을 찾아간 학생도 상당수에 이른다.

또한 ‘학생설계전공’ 제도를 통해 다양한 전공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전공을 설계하고 이수하여 졸업한 학생도 여러 명이다. 몇 년 전 졸업한 학생은 금속공예와 공학을 혼합한 ‘키네틱 조형학’이라는 학생설계전공을 이수하고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친 후 자신이 만든 ‘인공지능 로봇 이일오’와 함께 작업하는 현대미술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학문 간 경계를 뛰어넘는 융합 인재 양성이라는 자유전공 제도의 도입 취지가 잘 발현된 사례가 아닐까 싶다.

일부 부작용이 있겠지만 기존 학과의 경계를 넘어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융합 인재 양성을 위해 자유전공 확대는 불가피해 보인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라는 속담처럼 대학 교육 혁신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면 대학 사회가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 구조 조정이 시급한 상황에서 사회적 수요를 반영할 수 있는 자유전공 제도가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의 해결책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모처럼 만에 다시 살아난 자유전공의 르네상스가 우리나라 대학 교육을 혁신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범수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학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