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4월 4일 서울 중구 한국투자공사(KIC)에서 열린 '밸류업 프로그램 해외투자자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지난 2월 도쿄대 법대 상법 교수들과 도쿄대에서 자본시장 관련 학술회의를 한 바 있다. 단연 관심 사항은 양국의 밸류업 프로그램이었다. 지난 10년 한국 시장의 성과가 거의 제자리 수준이었다는 사실에 참석한 학자들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도대체 한국 자본시장은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남북 분단으로 인한 지정학적 리스크나 재벌 중심의 지배구조, 개인 투자자 중심의 자본시장과 박스권 장세에 대한 이력 등이 지적된다.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문제만 분석하고, 한탄만 하고 있을 계제가 아니다. 나는 금융법을 전공하는 학자로서, 또한 한국 자본시장에 투자를 하고 있는 투자자로서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공을 위해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밸류업 프로그램에 정부 전체가 나서야 한다. 금융위원회는 두 차례에 걸쳐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하였고, 그 내용은 금융위원회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부족하다. 금융위원회가 밸류업 프로그램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은 규제 측면이다. 하지만 뭔가 일이 되려면 채찍과 당근, 모두가 필요하다. 정부가 줄 수 있는 당근은 금융위원회가 아닌 다른 부처가 가지고 있다. 다른 부처의 참여를 가로막는 것은 밸류업 프로그램이 자본시장 정책으로만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밸류업 프로그램은 단순히 주가 상승을 위한 것이 아니다.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해 자본시장이 한 단계 성장한다면 정부가 당면한 연금 문제의 해결책이 되고, 새로운 세수 확보 수단도 될 수 있다. 나아가 부동산 문제의 해결 방안이 될 수도 있고, 넓게 보면 인구 감소에 대한 대응책이 될 수도 있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정부 전체에 있어 남의 일이 아닌 이유이다.

둘째, 정치적인 지혜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발표된 밸류업 프로그램에 법의 제정이나 개정이 필요한 것들은 빠져있다. 지난 4월 총선의 결과를 고려할 때 애당초 불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인 것 같다. 흔히 이야기가 나오는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은 국회의 도움이 필요하다. 정확히는 야당의 지지가 절실하다. 하지만 이들 세제 개편을 단독으로 놓고 보면 부자 감세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어떻게 야당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여기에 그간 논의만 되어온 지배구조 관련 법안들을 더해보면 전혀 다른 구도가 나올 수 있다. 주주대표소송이나 집단소송의 범위 확대, 징벌적 배상의 도입 등 번번이 기업 측의 반대로 무산된 수많은 법안이 있다. 이들을 하나로 묶어 입법을 도모한다면 어떨까. 정치적인 합의의 기반이 지금보다 공고히 마련된 시점을 찾기도 어렵다.

셋째, 안을 만들어 빠르게 추진해야 한다. 한국의 자본시장이 매력이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투하 자본에 대한 이익률이 다른 시장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산업 체계, 지배구조 등 다양한 요인이 있다. 장단기로 나누어 차근차근 대응해 나가야 한다. 안을 추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대부분 이유는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안의 문제점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배당소득 분리과세만 하더라도 세수의 감소나 부의 이전 수단이라는 생각이 가로막는다. 하지만 분리과세를 통해 배당 자체가 늘어나면 세수도 증가할 수 있다.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 현실을 고려하면 배당은 기업의 이익 환원에 대한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수단이 될뿐더러 그 자체로도 일반 주주들에게 이익이다.

‘국장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 시장에 투자한 결과가 어떠하였음을 아는 입장에서 틀렸다고만 하기 어렵다. 하지만 한국의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이 아닌 외국 시장에 투자한다면 자본시장의 성장 열매가 어디에 맺힐 것인가. 나는 2년여 전에 작은 돈이지만 아들의 이름으로 우리 시장에 투자를 했다. 초심자의 운도 따르지 않은 모양인지 이 글을 쓰는 지금 20퍼센트가 넘는 손실을 입고 있다. 아직 그 결과를 모르는 아들이 먼 훗날 성인이 되어 투자의 성과를 알게 되었을 때 아빠가 지능이 낮아 국장에 투자한 것이라는 비난을 듣고 싶지 않다.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밸류업 프로그램에 제언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