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화·정보화 시대에는 세계 어디에서나 사업을 원격으로 진두지휘할 수 있다. 스마트폰 하나만 들고 나가서 해외에서 6개월 이상 살면 세법상 국내 비거주자가 된다. 또한 해외에서 법인을 설립하면 시민권이나 영주권 취득이 쉬운 나라가 많다. 점점 더 인재와 재산을 국내에 붙들어 두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해외로 국부가 유출될 확률을 낮추는 방향으로 국내의 제도와 규정을 면밀하게 손봐야 한다. 특히 상속이나 증여 과정에서 지나친 세금 부담을 낮출 필요가 있다.

현재 상속·증여세법은 ‘사망자가 비거주자인 경우 국내에 있는 상속 재산만 상속세를 과세한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연로한 재산가가 죽기 6개월 전에 국내 재산을 해외로 송금해두고 해외에서 생을 마치면 국내에 남아 있는 재산에만 과세된다. 해외에 유출된 자산은 현지 국가에서 상속세를 낼 때 비과세되거나 공제 금액이 큰 경우가 많다. 상속세 부담의 국내외 차이가 클수록 해외로 국부가 빠져나갈 가능성이 커진다는 얘기다.

그뿐만 아니라 부유층이 적은 상속세를 노려 해외에 합법적으로 이주할 경우, 부모와 함께 떠난 자녀도 한국으로 되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40%는 상속세가 없기 때문에 국내 상속세를 피해 선택할 수 있는 나라가 제법 많다.

상속뿐 아니라 증여할 때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 현행 상속·증여세법이 ‘증여받는 사람이 비거주자인 경우 한국 내에서 증여받은 재산만 증여세를 과세한다’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리한 기업가가 자녀를 해외 유학을 보내거나 현지에 취업시킨 다음, 국내 재산을 팔아 해외로 송금하고 현지에서 증여하면 국내 증여세를 내지 않는다.

결국 상속·증여에 대한 과도한 세금 부과는 국부와 두뇌의 해외 유출을 장려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상속세율이 세계 최고 수준인 60%에 달하기 때문에 세금을 내기 위해 국내 기업이 해외 자본가에 매각된 사례도 있었다.

이제는 지나칠 정도로 무거운 상속세 부담을 낮춰 해외 주요국과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속세를 낼 때 자녀·가족공제 등이 10억원이지만, 미국은 상속 공제금이 약 170억원이다. 또한 미국·영국·프랑스는 우리나라와 달리 배우자에게는 상속세가 발생하지 않는다. 부부가 공동으로 재산을 축적한다는 점을 감안할뿐 아니라, 자식 세대로 넘어가야 상속세 과세가 합당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가업상속공제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현재 변호사·회계사·세무사·변리사 등 전문 면허증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기업 규모가 작은 경우에도 가업상속공제가 적용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런 분야의 젊은 전문가들이 회사를 물려받는 것을 사양하고 해외 진출로 눈을 돌릴 확률이 적지 않다.

이상 살펴본 것처럼 상속·증여세법은 인재와 국부를 해외로 유출시킬 가능성을 높이는 갖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저출산 시대에 국가 소멸을 부추기는 악법 요소가 한둘이 아니다. 하루빨리 과중한 부담을 낮추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