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1일 서울의 한 대학교 의과대학 강의실 앞 사물함에 의대생 가운과 팔토시가 놓여 있다. 해당 학교 의과생 96.7%가 의대동맹휴학에 동의했다고 학교 관계자가 밝혔다. /장련성 기자

전공의 사직으로 시작된 의료 공백이 5개월째에 접어들고 있다. 정부에서 행정조치 철회와 사직서 수리 등을 발표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공의와 환자 불편 등이 주요 관심사가 되는 바람에 주목을 덜 받고 있지만, 전국의 1만8000여 명의 의과 대학생 또한 휴학계를 제출하고 교정을 떠나 수업 거부를 이어가고 있다. 여느 해 같으면 지금쯤은 학기말고사와 학점 부여로 바쁠 시기인데 학교는 적막강산이다.

일선 의과대학 학장들은 개강 후 두 달이 지날 무렵부터 학생들의 휴학을 승인해줘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교육부는 동맹휴학을 이유로 휴학 불허를 천명해왔고 의과대학을 운영 중인 각 대학 총장들을 압박해 휴학 승인을 막는 데 급급한 모습이다.

마침내 지난 10일 교육부는 의과대학 학사운영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는데, 그 내용은 의대생들의 집단 유급을 막기 위해 학기제에서 학년제로 전환하고 교육과정을 개편하라는 것이다. 핵심은 수업을 듣지 않은 학생도 전원 유급시키지 말고 일단 복귀하면 몇 개월 내에 1년 치를 압축 수업해서 강제 진급시키라는 뜻이다.

의대 증원 정책과 의사 집단의 악마화가 본 사태의 핵심이며 이에 항거하는 학생들의 집단행동은 이해되는 면이 있다. 그러나 행동에는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강의실을 떠난 학생들이 복귀만 하면 속성 교육을 통해 강제 진급시키는 것이 과연 교육적인가? 현재 재학 중인 의대생 1만8000여 명 전원이 6년 과정 중 한 개 학년의 교육은 부실한 채로 의사 면허를 취득하게 되면 전체 의사의 10% 넘는 숫자가 부실 교육을 받고 사회에 나가는 셈이 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는 점을 정부는 모르고 있는 것일까?

의대 입학 정원의 급격한 증가가 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 상식적인 지적이다. 급하게 국립의대 교원 1000명을 증원하고 개원의까지 대학교수로 바로 채용하게 하려는 조급함을 보면 정부도 문제를 인식은 하고 있는 듯하다. 이제 와서 의학 교육 선진화라고 호들갑을 떨지만 교육부는 사실 그동안 의학 교육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는 점 누구나 알고 있다. 의대 증원도 보건복지부에서 결정해 교육부에 통보했고, 교육부 소관 기관이던 국립대학병원들을 보건복지부로 이관시키기로 할 때도 태연했던 교육부다.

대통령 선거철이면 늘 등장하는 이슈 중의 하나가 교육부 폐지 혹은 축소다. 적어도 고등교육에서 교육부의 역할은 이제 수명이 다한 것 같다. 대학 교육을 각 대학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은 이제 진부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부의 대학 지도 감독은 지속되고 있으며 등록금 동결 이후 재정 상태가 안 좋아진 대학들은 각종 재정 지원 사업 탓에 교육부 눈치 보기에 바쁘다.

“대학을 교육부에서 떼야 하는 두 가지 이유”. 이것은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취임하기 1년 전 모 언론에 기고한 글의 제목이다. 이 장관은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 대학이 교육부 산하에 있으면 4차 산업혁명의 허브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둘째는 AI 교육 혁명이 일어나려면 입학 정원과 입시를 중심으로 한 규제를 탈피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이 장관에게 취임 후 소신을 바꾼 것인지 아니면 소신을 펼 수 없는 환경이 된 것인지 묻고 싶다. 교육부에서 의과대학의 휴학, 유급, 수업 일정까지 촘촘하게 통제하는 ‘교육통제부’가 아니라 대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해 미래로 나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교육부가 되어주기를 간절히 요청한다. 장관 취임 1개월 전 한국대학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장관이 했던 말을 그대로 옮긴다. “교육부가 이끈다고 생각지 말고 최대한 현장의 혁신이 자발적으로 일어날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환경이란 건 결국 규제 개혁을 말한다. 대학은 아예 교육부가 손을 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