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신규원전 예정부지 두코바니 전경. /한국수력원자력

참 극적인 쾌거다. 원전 종주국이라는 프랑스를 제치고 체코 원자력발전소(원전) 두코바니 5·6호기 원전 건설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이 선정된 건 감개무량하다. 원전 기술 자립을 성공시킨 한수원은 물론 각급 원자력 연구소와 연구 기관들, 한전기술, 두산에너빌리티, 대우건설, 한전KPS 등 설계, 시공, 주기기, 정비 업체에서 ‘K원전’을 위해 수많은 관계자가 노고를 아끼지 않은 결과다.

1983년 수산인더스트리를 창업해 원전을 비롯한 각종 발전 설비 사업에 40년 넘게 종사해 온 입장에서 이번 체코 원전 수주가 탈(脫)원전으로 침체된 관련 업계에 활력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번 수주로 한국은 원전 설계, 제작, 건설, 운전, 유지 보수에서 세계 최고 수준 기술을 보유한 국가라는 걸 전 세계에 다시 한번 알렸다. 15년 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주 당시 감격이 다시 떠오른다.

잘 알려진 대로 한국의 원자력 기술은 도입기부터 극적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 기술자 시슬러를 통해 원전이 전력 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임을 인식하고 원전 건설을 추진했다. 일본이 원자폭탄 2발을 맞고 영토가 초토화되면서 항복한 뒤라 원자력에 대한 국민들 거부감이 적지 않았지만 신념을 갖고 밀어붙였다.

1958년은 국내 원전 기술이 출발한 해다. 이때 국회 반대를 무릅쓰고 1958년 원자력법을 통과시켰고, 국내에선 한양대에 최초로 원자력공학과가 만들어졌다. 김연준 한양대 총장은 이 대통령 권유로 원자력공학과를 만들었는데 당시 학부 과정에 원자력공학과를 둔 대학이 세계적으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과감한 결단이었다.

이후 한양대를 방문한 이 대통령은 “동양의 MIT로 세계적 과학자를 배출할 것을 기대한다”며 학생들에게 “양반 노릇 할 생각하지 말고 일을 해야 한다”고 훈시했다고 한다.

이듬해 서울대도 원자력공학과를 설치하면서 원전 연구 인프라가 하나둘 자리 잡기 시작했다. 지금은 카이스트, 포항공대를 비롯해 20개 가까운 국공립·사립 대학에 원자력 공학 관련 학과가 있다.

한국 최초 원자력발전소 고리 1호기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1년 착공, 1978년 발전을 시작했다. 고리 1호기는 미국 웨스팅하우스 노형(爐型)을 채택했다. 그러나 당시 우리 기술로는 건설할 회사가 없어서 영국 EEC가 원도급을 하고 현대건설과 동아건설이 하청을 해서 건설했다. 이후 미국 웨스팅하우스 경수로형, 캐나다 캔두형, 프랑스 알스톰형, 한국형 1000㎿ 경수로형(OPR-1000)을 거치며 한국은 원전 기술 자립을 차곡차곡 이뤄갔다. 남의 나라 기술을 배우는 과정 속엔 우리 기술자들 땀과 눈물이 녹아 있다. 그들은 원전 강국의 꿈을 위해 밤새워 외국어 원서를 읽으며 원전 기술을 우리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여러 나라 노형을 연구하고 건설하는 과정에서 선진 기술 축적은 차츰 이뤄졌고, 1992년부터 10년 동안 과학기술 예산 2330억원을 들여 세계 최대 용량이라는 한국형 원자로 APR1400 개발까지 성공했다. UAE에 수출한 바로 그 원전이다. APR1400은 미국이 다른 나라가 개발한 원자로 중에서는 처음으로 설계 인증을 했다. 미국에 APR1400을 지어도 된다는 뜻이었다.

이번에 체코에 들어가는 모델은 APR1000으로, APR1400을 개량한 것이다. 두 모델을 두고 한국 원전 업계 대부와도 같은 미국 웨스팅하우스는 자사 기술을 모방했다면서 한수원을 상대로 소송도 제기했다. 어쩌면 당연한 반발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수원이 1심 소송을 일단 이겨 우리 기술 독자성을 인정받은 상태다.

지난 정부 탈원전 정책 후유증으로 원전업계는 물론, 각 대학 원자력공학과 학생들까지 사기가 떨어져 학과 지원율이 낮아지고 재학생들이 다른 진로를 고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번 체코 원전 수주 결과가 새로운 전기(轉機)가 되길 기원한다. 아직 한국 땅에는 원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