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와 폭염이 오래가 시민들은 지쳐간다. 우리나라는 도시 외곽이 대부분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기온이 상대적으로 낮다. 하지만 빌딩과 도로로 덮여 있는 도심에서는 열을 방출하기 쉽지 않다. 숲은 대체로 도심보다 기온이 3~7도 낮다.
나무는 뿌리에서 가져온 물을 수증기로 뿜어내면서 숲 주변의 열기를 식혀준다. 숲은 뙤약볕을 가리는 그늘 효과뿐 아니라, 나뭇잎이 수증기를 뿜어내면서 더운 열기를 식혀주는 증산 효과가 있다. 특히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그 사이로 바람이 통하면 폭염과 열대야에 대한 저항력은 강해진다. 나무와 숲이 도시의 폭염을 누그러뜨릴 대안이다.
열기를 외부로 빼내 시원한 도시를 만들려면 도시 외곽 산줄기와 계곡에 부는 바람을 도심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이 바람을 도심으로 끌어들이는 통로가 바로 가로수이고, 도시 곳곳에 들어선 아파트 내 나무들이다. 서울 종묘 숲에 들어서면 창경궁과 북악산의 산줄기가 연결되어 있어 산바람의 서늘함을 느낀다.
독일 슈투트가르트는 ‘바람길의 도시’로 유명하다. 도시를 만들 때부터 도로와 건물 등 도시 인프라를 바람길을 염두에 두고 설계했다. 도시 외곽의 바람을 도심으로 끌어들이고자 함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대부분 도시에서 도심의 건축물 높이와 도로 폭을 조정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도시 숲을 만들어 바람길을 내려면 도시에 흩어져 있는 숲을 연결해 도시 전체를 방패처럼 뒤덮는 캐노피 숲(UTC·Urban Tree Canopy)을 만들어야 한다. 캐노피 숲은 마치 양산처럼 숲 아래 2m 정도 공간은 나무 줄기만 있고 나뭇잎은 없는 구조다. 나무들이 어깨 동무를 하고 스크럼을 짠 모습의 캐노피 숲은 한낮 뙤약볕을 막아주고, 밤에는 숲 지붕으로 연결된 통로로 바람이 통하게 된다.
이런 원리는 우리 조상이 한여름 마을 당산나무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 모깃불을 피우고 무더위를 이겨낸 것과 비슷하다. 전통 마을 입구의 당산나무 숲은 입구를 완전하게 가리지 않고 나무들은 지붕을 이루어 그 아래로 시원한 바람이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바람이 넓은 곳에서 좁은 곳을 통과할 때 속도가 빨라지는 벤투리 효과를 실생활에서 구현한 것이다.
서울에는 북한산, 수락산, 아차산, 남산, 관악산 등 큰 도시 숲이 대개 외곽에 있다. 도시 내부에는 곳곳에 근린 공원, 어린이 공원 등이 있다. 도시 외곽 숲과 근린 공원, 아파트 단지 나무들을 연결하면 전통 마을 당산나무 숲에서 불던 시원한 바람을 다시 불러 올 수 있다.
도시를 거미줄처럼 잇는 가로수 길과 도시 전체에 흩어진 아파트 나무들의 ‘어깨’를 잘 이어주면 찬 바람과 더운 바람이 대류를 이루는 과정에서 도시 전체에 바람이 통하게 할 수 있다. 회색 도시를 자연으로 되돌릴 수 있는 새로운 도시계획의 첫걸음은 ‘바람길을 품은 도시 숲’을 만드는 것이다.
바람길은 무엇보다 숲 사이 공간과 틈이 있어야 여유롭다. 도시의 열기를 빼내려면 무작정 나무를 빼곡하게 심기보다 가로수와 아파트 나무들 아래 바람길이 이어지도록 다듬고 연결하는 캐노피 숲으로 바꿔가야 한다. 시민이 생활하는 일상 공간에서 바람길을 품은 도시 숲을 살리고 연결하는 도시계획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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