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진보 진영은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 경제에는 우편향과 좌편향이 함께 존재하는데 보수 진영은 좌편향만을, 진보 진영은 우편향만을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상황을 보면 더 희망이 없어 보인다. 진보 진영은 좌편향을 더 좌측으로 몰아가고 있다. 양곡 관리 법안이나 노란 봉투 법안 등을 보면 확연히 그렇다. 보수 진영은 보수의 가치인 시장경제 원칙을 보존할 결기가 보이지 않는다. 따뜻하기만 하면 보수가 아니고 진보이다. 시장경제 원칙을 회복하면서 따뜻해야 의미 있는 보수가 된다.
우편향은 성장 우선의 철학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아직도 복지 시스템은 미흡하다. 사회적 지출의 GDP 대비 비율은 2022년 기준 14.8%로, OECD 국가 평균인 21.1%에 한참 못 미친다.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좌편향은 시장경제 원칙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인력이라도 해고하기 어렵다. 생산성을 넘어서는 최저임금, 복잡한 근로시간 제도, 약자에 대한 대출 확대와 저금리, 신용 사면 요구 등 수많은 약자 지원 정책으로 기업과 소비자의 경제적 자유가 침해되고 시장경제 원칙이 훼손되어 왔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보다 비즈니스 하기 어렵다.
그런데 취약한 복지 제도와 시장경제 원칙의 훼손은 동전의 양면이다. 원래 약자 보호는 복지 제도·사회 안전망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쉬운 방법인 시장경제 원칙을 훼손하는 방법을 택했다. 해고를 어렵게 하고 최저임금을 높게 책정했다. 만약 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확충되어 약자를 보호할 수 있었다면 노동 관련 제도는 좀 더 유연해질 수 있었을 것이고 최저임금 제도도 생산성 수준의 임금 지불을 거절하는 악덕 기업주를 제재하는 정도로 운영될 수 있었을 것이다. 취약한 복지 제도 때문에 시장경제 원칙은 훼손되고, 그래서 경제는 시들고, 약자 지원 필요성은 더 커지고, 시장경제 원칙은 더 훼손되고, 경제는 더 시들면서 약자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지속된 것이다.
이제 더 늦기 전에 바꿔야 한다. 약자는 경제정책·제도가 아니라 사회 안전망으로 보호하고 시장경제 원칙은 회복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다시 날아갈 수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 사회 안전망을 제대로 구축해야 할 단계가 이미 지났다.
사회 안전망을 제대로 만들려면 복지 제도 전반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복잡다기한 복지 제도를 단순화하면서 효과적인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재원도 마련해야 한다. 부가가치세율을 높이고 각종 조세 감면 제도를 축소해야 한다. 복지 제도의 근간을 저소득층에게는 보조금을 지급하고 고소득자 위주로 세금을 내게 하는 부(負)의 소득 세제로 전환할지도 검토해야 한다. 복지 지출과(현재 GDP 대비 14.8%) 국방비 지출의(2.7%) 합이 스웨덴 수준이(25%) 되도록 높여야 한다. 경제정책을 통해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 이상 나올 수 없을 정도로 높여야 한다.
복지 지출을 스웨덴 정도로 확대하면서 미국 정도의 경제적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 그래야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의 경제 역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 특별법을 만들어 미국 정도의 규제만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민간이 현재의 규제가 미국의 규제 수준을 넘어선다는 것을 소명하면 그 넘어서는 규제는 폐지하는 방법이다. 전략적 첨단 산업 지원 문제만을 정부와 민간이 협의하고 나머지 경제는 그냥 민간에 맡겨야 한다. 대규모 집단 규제도 폐지되어야 하고 해고 등 노동 관련 제도도 모두 미국 수준으로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
노동 유연성을 비롯하여 미국 정도의 경제적 자유를 허용하는 만큼 기업의 지배 구조도 바뀌어야 한다. 집중 투표제 등을 통해 이사회 구성을 다양화하고 기업 경영도 지배 주주 가족 이익 중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런 원칙을 회사 정관에 명시하고 준수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법인세율과 상속세율을 낮춰줄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우리의 경제발전 모델은 ‘한국 주식회사’였다. 정부가 기업과 하나가 되어 기업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정부의 경제 개입은 지속되었지만 그 내용은 기업의 발목을 잡는 것으로 변해갔다. 약자를 사회 안전망이 아니라 경제정책·제도로 보호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제 모델을 바꿔야 한다. 든든한 사회 안전망 위에 시장경제 원칙을 굳게 지키는 모델로 바꿔야 한다. 미국 정도의 경제적 자유와 스웨덴 정도의 복지 지출 모델로 가야 한다. 혁명 수준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좌편향과 우편향을 동시에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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