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된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 글로벌 시장의 저탄소 제품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이다. 2026년 1월부터 철강 등 규제 대상 제품을 수출하는 기업은 제품 생산의 모든 과정에서 배출한 총 탄소 배출량에 해당하는 CBAM 인증서를 구매해야 한다. 탄소 배출량이 크면 그만큼 인증서의 구매 비용이 증가한다.
배터리 수출 기업은 유럽의 지속 가능한 배터리 규제에 따라 2025년 8월부터는 배터리 공급망의 실사 요건의 하나로 탄소 배출량을 공개하고 기준치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수출을 못 할 수 있다. 자동차 수출 기업들은 2026년 6월부터 자발적으로 자동차의 전 과정 온실가스 배출량을 보고해야 한다.
이 외에도 수출품에 대한 다양한 탄소 규제가 현실화되고 있다. 제품 탄소 규제는 유럽연합과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 시작했지만 머지않아 전 세계 국가로 확산될 것이다. 2023년 수출액 순위로 세계 7위인 우리나라가 글로벌 제품 탄소 규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큰 타격이 될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은 자원을 채굴한 후 가공해 소재와 부품을 만들고, 이를 조립해 만든다. 구매한 제품은 사용 후 버려지면 이를 재활용과 소각, 매립 등을 통해 지구로 버린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제품의 전 과정(life cycle)이라 부른다. 제품 탄소 규제는 제품의 전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 배출량을 제품 1단위로 환산한 제품 탄소 배출량을 기준으로 시행한다.
이 중 전기는 제품 전 과정의 모든 단계에서 에너지원으로 사용된다. 전기는 발전소를 가동해 생산하므로 발전 과정에서 많은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실제로 우리가 입는 옷의 전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 배출량 중에서 최소 30% 이상이 전기로 인한 것이다. 건설용 철강 제품과 가전제품 등은 70% 이상이다.
그런데, 현재 사용하는 전기의 탄소배출계수는 2002년도에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은 과거보다 발전소의 효율이 높아졌고 발전원별 비율도 달라져서, 이 탄소배출계수는 현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이에 국내외적으로 그 신뢰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수출 기업들은 탄소 배출량을 계산할 때 전기의 경우 국가 공식 계수를 사용하지 못하고 해외에서 만든 계수를 사용하는 실정이다.
이에 환경부는 2002년 이래 20년 만에 3년의 개발 과정을 통해 전기 탄소배출계수를 새로 산정했다. 개발 과정 동안 발전소별로 자료를 얻기 위해 힘든 설득 과정을 거쳤고, 참여한 발전소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의 신뢰성을 검증하는 과정도 그리 원활치 않았다. 국제사회가 인정할 수 있는 전기 탄소배출계수의 개발이 시급하지만 이런 과정을 매년 할 수 있을지, 정부로부터 관련 예산을 매년 지원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발전사들은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매년 3월까지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반영된 온실가스 배출 명세서를 관련 기관에 제출한다.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화력발전의 비중은 줄고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비중은 증가할 것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 전기 탄소배출계수는 줄고, 그 전기를 사용한 수출품의 탄소 배출량도 감소하여 수출품의 탄소 경쟁력은 높아질 것이다.
이것이 발전소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반영된 탄소배출계수를 매년 갱신해야 하는 이유이다. 특히, 수출 기업에 대한 지원을 위해서는 전체 가치 사슬을 포함한 탄소 배출(Scope 3)을 포함시켜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전기 탄소배출계수를 매년 갱신해야 한다.
필자는 한국전력과 발전 자회사, 민간 발전사가 힘을 모아 ESG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전기 탄소배출계수를 매년 공개할 것을 제안한다. 만일 이 과정이 힘들면 수출 기업의 지원을 위해 법제도 개선을 통해서라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탄소 중립을 향한 국제사회의 요구로 제품 탄소 규제는 갈수록 보다 강해지고 확대될 것이 자명하다. 수출 제품의 탄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전기 탄소배출계수를 매년 갱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