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의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대국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알파고 모멘텀’이라는 말이 생겨났고, 이후부터 AI 분야에 관심이 커졌다. /조선일보 DB

알파고가 가져온 충격을 기억하는가? 2016년, 지금부터 8년 전이다. 당시에는 이세돌 기사가 알파고를 상대로 다섯 경기 중 네 경기에서 패배했다는 것이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한 경기라도 이겼다는 것이 오히려 경이롭게 느껴진다. 그만큼 인공지능 기술은 지난 수년간 눈부신 발전을 했다. 특히 지난 2년 동안 드러난 생성형 인공지능의 발전은 인류 전체를 흥분과 긴장에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나날이 발전하는 인공지능 기술을 보며 장밋빛 미래를 그리는 시각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낸 것은 극단적 불안감을 호소하는 진영이었다. 기술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높은 만큼 6개월 동안 아예 기술 발전을 멈추자는 주장도 나타났고, 인공지능으로 인한 인류의 멸망을 우려하는 주장도 나타났다.

이런 다양한 주장이 나타나면서 국제사회를 통해 합리적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에 힘이 실리게 되었다. OECD나 UNESCO, G7을 비롯하여 다양한 장에서 논의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논의 상황을 배경으로 2023년 10월에 UN 인공지능 고위급 자문기구가 탄생했다. 인공지능이 인류 전체에 미칠 잠재적 영향을 생각하면 UN을 통해 글로벌한 차원에서 논의가 이루어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필자를 포함한 39명의 자문기구 위원들은 지난 1년간 수많은 화상 회의 및 대면 회의를 통해 논의를 정리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 및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기회를 가졌다. UN 사무총장도 수차례 논의에 직접 참여했다. 자문기구의 논의는 작년 12월의 중간보고서에 이어 이번 9월의 최종보고서로 정리되었다.

최종보고서에 담긴 제언 사항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우선 국제과학패널을 구성하여 매년 인공지능 현황에 관한 전문가 보고서를 마련하도록 한다. 이는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물론 그 사회적 영향 또한 워낙 변화무쌍한 상황이므로 인공지능의 변화상에 대해 주기적인 현황 파악을 하는 것이 합리적 논의를 위한 선결 요건이라는 판단에서 출발한다. 과학패널은 공학자뿐 아니라 사회과학자 등 여러 영역의 전문가를 포함한다.

둘째, 이 보고서에 기초하여 다양한 시각의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글로벌 ‘정책 다이얼로그’를 주기적으로 진행한다. 이를 통해 인공지능 거버넌스에 관한 방향을 정리한다. 셋째, 관련 표준 기구들 사이의 협의를 통해 일관성 있는 표준 체계를 구축한다. 넷째, 인공지능으로부터의 혜택이 선진국에 집중되지 않도록 개발국가 등에 대해 다양한 지원을 제공한다. 다섯째, 이러한 지원활동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글로벌 펀드를 조성한다. 여섯째, 인공지능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핵심 원천은 결국 학습 데이터인 것을 고려하여, 데이터에 관한 접근, 상호 운용성 확보, 프라이버시 등의 관련 논의를 별도 프레임워크를 통해 진행한다. 일곱째, 다양한 활동이 효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UN에 소규모의 인공지능 사무소를 둔다. 한편, 현시점에서는 별도 국제기구의 설립은 추천하지 않는 것으로 논의가 정리되었다. 다만 주기적인 현황 파악 및 논의 과정을 통해 향후 적절한 시점에 국제기구를 설립할 가능성은 계속해서 열어두기로 했다.

이러한 제언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아무리 좋은 제언이라도 현실적인 추동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이는 제언을 위한 제언에 그치고 말 가능성이 높다. 다행스럽게도 제언 사항들은 UN ‘글로벌 디지털 콤팩트’에 반영되어 향후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회원국 사이의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제부터는 제언 사항들의 진행을 위한 논의가 시작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격에 걸맞은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고학수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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