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가 웃다가 코뚜레 부러질 일들이다. 김건희 여사의 계좌를 거쳐 이뤄진 주식 거래 48건이 이미 유죄로 판단되었고 자신의 주식을 허락 없이 싸게 처분했다고 작전 세력에 항의했다는 법정 증언까지 나왔는데도 김 여사는 주가조작과 아무 관련이 없단다. 최재영 목사가 디올 백 사 들고 김 여사에게 찾아가 아무개 무엇 시켜주고 국립묘지 안장해 달라고 부탁한 것은 대통령 직무와는 아무 관련이 없단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들을 가리려 한다. 타조가 다급히 모래 속에 머리를 파묻는 모습이 생각난다. 국민을 장기판의 졸(卒)로 보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변명이 이어지고 있다. 부러진 코뚜레야 다시 끼워 넣으면 되지만 모래 속에 머리를 처박은 타조는 맹수나 사냥꾼이 그대로 돌려보내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간 장기판의 졸로 숨죽이고 있던 국민은 이제 맹수나 사냥꾼이 되려 하고 있다.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를 턱걸이한 지 오래다. 더 이상 대통령에 대한 충고나 간언도 공염불이 된 지 오래다. 에코 체임버(echo chamber)에 갇혀있는 대통령을 극렬 지지자들이 이중 삼중으로 에워싸고 있다. 오히려 대통령이 한술 더 떠 마이동풍(馬耳東風)이 되고 있다. 부지기군 시기소사(不知其君 視其所使), 군주가 누구인지를 알려거든 그가 부리는 사람을 보라. 만고의 명언이다. 국정 전 분야에서 파란이 일고 국민의 심성은 처처에서 편 가르기로 사분오열해 상처 받고 있다. 민심이 갈라지면서 떠나는 소리가 들린다.
거대 야당과 이재명 대표의 책임은 왜 거론하지 않느냐는 예의 그 양비론자들의 질타 목소리가 또 들린다. 늘 그래 왔다. 그러나 국정 파탄과 민심 이반에 대한 직접적 책임은 헌법상 대통령에게 있다. 거야(巨野)를 만들어준 것도 국민 뜻이다. 국민만 보고 가겠다는 대통령 말 속의 국민은 어떤 국민인지 묻고 싶다.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고 한다. 참으로 경악할 일이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민심뿐이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 대통령은 초월적 존재가 아니다.
헌법은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한과 더불어 무거운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현행 헌법상 정부 형식은 기본적으로 대통령 책임제다. 국정 운영의 실책, 파탄이나 민심 이반에 따른 국가적 혼란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1차적 책임을 져야 한다. 헌법에 내각이라는 용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하는 지위에 있을 뿐 국정에 관한 최종 책임자는 대통령이다. 그럼에도 그간 국정 파탄의 고비마다 총리나 장관을 정치적 방탄벽으로 하여 대통령은 국정 운영 결과에 초연하도록 잘못된 헌정 운용 관행을 되풀이해 왔다. 흔히들 대통령은 내란·외환죄를 범하거나 탄핵에 의하지 않는 한 재임 중의 잘못에 책임을 지지도 않고 물을 수도 없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런가. 국정 운영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자라는 점과 대통령으로서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하도록 한 헌법 규정에 비추어 볼 때, 대통령이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여 국가적 혼란과 현격한 민심 이반 사태를 야기할 때에는 임기 중이라도 그 진퇴를 명백히 해야 한다는 것이 헌법의 취지다. 대통령이 궐위된 때 그 권한 대행자와 후임자의 선거에 관한 규정을 직접 헌법에 둔 것도 이에 대비한 것이다.
우리는 헌법상 임기가 보장된 공직자가 중도 하차한 적지 않은 경험이 있다. 여기에 대통령만이 예외라는 막연한 인식이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허상을 만들었다. 당선만 되면 모든 것을 움켜쥘 수 있다는 후진적 통치권 개념과 권력의 인격화 현상이 국민의 의식 수준을 압도해 왔다. 대통령이 독선, 독단, 아집에 빠져 권력을 휘둘러도 임기 5년은 보장받는다는 단임제의 폐해는 결국 국민의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국민은 이미 촛불 집회라는 저항권 행사를 경험한 바 있다.
대통령은 국민의 으뜸가는 심부름꾼이다. 심부름꾼이 잘못하면 주인에게 책임을 지고 심부름꾼 역할에 대하여 진지하게 성찰할 줄 알아야 한다. 윤 대통령은 이대로 가면 식물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사이 국가와 국민이 받는 혼란과 낭비, 스트레스는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이라도 주변을 정리하면서 남은 임기 동안 국정을 제대로 이끌어가는 것이 그나마 차선책임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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