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곧 해리스 아니면 트럼프의 당선 소식이 전해질 것이다. 4년 전 패배한 전직 대통령이 다시 출마하고, 현직 대통령이 재선을 포기하는 등 역대 어느 선거보다 우여곡절 끝에 치러지는 선거다. 미국 대선의 향방은 후보의 매력이나 국내 문제 즉 경제 상황과 사회적 쟁점 등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제 관계나 외교는 큰 변수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조금 달랐다. 유럽과 중동에서 펼쳐지는 두 전장(戰場)의 무게 때문이다.
특히 중동 문제는 권토중래(捲土重來)를 노리는 트럼프에게 호기(好機)였다. 한·미·일 안보 협력은 물론, 쿼드, AUKUS 등 외교적 성과가 작지 않았던 동아시아 외교와 달리, 바이든의 지난 4년간 중동 정책은 실패에 가까웠다. 중동 3대 공약을 이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란 핵 합의 복원을 공약했으나 무위로 돌아갔다. 둘째,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 평화 협정과 수교 추진 약속도 진전이 없었다. 오히려 빈살만 왕세자와의 관계는 틀어졌다. 셋째,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평화 협상을 균형 있게 중재해서 두 국가 해법의 실질적 진전을 이루겠노라 공약했지만 지금 전쟁 상태다. 가자 사태는 해법을 찾지 못하고 인명 피해만 쌓여가고 있다.
트럼프는 ‘원칙만 내세우며 우유부단한 바이든과 다른 자신이 집권했더라면’이라는 가정법을 내세우며 공세에 나섰다. 가자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자신과 가까운 친구 빈살만과 네타냐후를 설득, 사우디와 이스라엘 수교도 성공시켰을 것이고, 트럼프판 이팔 평화안(案)인 ‘세기의 협상(deal of the century)’도 실행단계에 들어갔을 것이라는 공격이었다. 중동 문제는 반유대주의 논쟁과 맞물리며 미국 내 사회적 이슈가 되어갔다. 미시간 등 아랍 무슬림 유권자들이 많은 경합주 표심에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누가 되든 중동 문제는 당선 직후부터 팔을 걷어붙이고 챙겨야 하는 최우선 외교 사안이다. 각 후보는 당선 이후 어떤 중동 정책을 펼칠까? 미국의 기본 원칙 즉 ‘친(親)이스라엘 반(反)이란’기조는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이란을 다루는 방식과 행태를 예상하면 두 후보의 뉘앙스는 사뭇 다르다.
해리스는 시간과 품을 들이되 외교적 해법을 모색할 것이며, 이스라엘, 이란 공히 원칙에 입각해 대응하려 할 것이다. 일단 바이든의 중동 3대 공약을 유지하면서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부에 대한 태도는 강경했던 오바마 쪽에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는 미국의 무조건적 이스라엘 지지가 외교력을 약화시킨다고 보았다. 해리스가 당선될 경우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은 변함없을 것이나, 네타냐후의 강경 보수 정책에 대해서는 필요한 압박을 가하며 통제하려 할 것이다. 가자 사태의 해법 최우선 순위는 인질 석방과 휴전 협상에 두고 있다. 팔레스타인이 겪는 고통에 주목하며 인도주의적 접근을 확대할 것임을 밝혔다. 하마스는 철저하게 응징하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무고한 죽음도 적극적으로 막겠다는 입장이다. 네타냐후 정부와 결이 다르다.
해리스는 이란 핵 개발 관련 외교적 해법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다만 이란에 대한 기본 입장은 오바마보다 이란에 더 비판적이었던 바이든의 입장과 가깝다. 해리스는 이란을 미국 ‘최대의 적(the greatest adversary)’이라 적시했다. 따라서 핵 협상을 재개하더라도 2015년 합의안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란을 압박하는 더 많은 조건이 따라붙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대화의 원칙은 계속 유지할 전망이다.
트럼프는 어떨까? 좌고우면 않고 이스라엘 편들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9월 19일 미-이스라엘 위원회 연설에서 자신과 이스라엘을 정치적 공동 운명체라 선언했다. 이번 대선에서 자신이 패배할 경우 이스라엘은 2년 내에 사라질 것이라며 위기의식을 고조시키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할 일을 하고 있으며 미국은 전폭적으로 돕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단기전을 강조하며 외교보다는 힘에 의해 교착 상태를 풀어나갈 것을 선호한다. 가자 사태는 테러와의 전쟁이며, 따라서 휴전이 아니라 승전으로 끝내야 한다며 하마스, 헤즈볼라의 배후 이란에 대한 군사작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나 눈길을 끄는 대목이 하나 있다. 10월 20일 사우디 언론 알아라비야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역작인 아브라함 협정에 향후 이란을 포함시키고 싶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그림인지를 설명하지는 않았다. 이란 체제의 붕괴를 염두에 둔 발언일 수도, 아니면 현 체제에 대한 강압과 설득을 통해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의도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트럼프의 구상 속에 이란과의 새로운 전기(轉機) 마련이라는 그림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백악관에 다시 들어간다면 4년 임기 동안 역사적 족적을 남기고 싶어하지 않을까? 악의 축인 이란을 굴복시켜 자신의 최대 업적인 아브라함 협정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싶지 않을까? 그렇다면 상상외의 포석을 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 재임 시 백악관에서 이란 업무를 담당했던 리처드 골드버그는 누군가 트럼프의 행보를 예측한다면 그는 외교 안보든, 언론이든, 사업이든 할 자격이 없다고까지 말했다. 그만큼 트럼프의 게임은 예측 불허다. 지금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변화 가능성을 늘 주시해야 한다.
해리스 진영이 외교 정석대로 포석하는 원칙론자라면 트럼프는 승부사에 가깝다. 예측을 허용하지 않으며 판을 흔들고, 막판까지 몰아쳐 혼돈 속에서 이익을 추수하는 행태가 트럼프 비즈니스의 특성이었다. 트럼프의 유일한 예측 가능성은 불가측성이라는 말대로다.
2025년 1월 20일 이후 미국은 기존의 가치와 질서의 정석 외교를 펼치는 바이든의 후임 해리스가 그 노선을 이어갈지, 아니면 변칙 외교를 통해 교착상태를 깨며 혼란을 감수하는 트럼프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지 이제 이틀 후면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중동은 물론, 유럽과 한반도까지 작지 않은 여파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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