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러시아 파병을 박정희 대통령의 베트남전 참전에 빗대는 사람들이 있다. 겉모습만 닮았을 뿐이다. 미국은 1960년대 당시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선도국이었고 절대적 경제 부국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러시아는 반미(反美) 국가 진영에서도 중국 다음의 ‘넘버 2’이고, 세계 GDP의 1.8%만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북한 입장에서 현상 타파를 도와줄 전략적 파트너로서 러시아가 최선의 선택인지 의문이다.
이미 북한의 러시아 파병이 중국의 골칫거리라는 외신 보도가 나오고 있다. ‘중국몽’ 실현에 장애물이라는 것이다. 김정은도 중국의 거부감을 예상했을 것이다. 북·중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얘기가 들리더니 지난 여름 중국이 북한 외화벌이 노동자들의 비자 연장을 전면 거부해서 김정은의 분노가 폭발했다고 한다. 중국 주재 공관원들에게 “중국 국경절이나 기념일에 참석하지 말라”는 1호 지시를 보냈다는 말도 들린다. 김정은이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각오하고 러시아행 과속 열차에 올라탄 것도 그 연장 선상일 것이다. 성장 과정에서 경험한 낮은 자존감이나 열등감이 폭발하는 것이 분노 조절 장애인데, 김정은이 중국으로부터 무시당했다는 피해 의식이 러시아로 접근하는 지렛대 역할을 한 것이 아닐까.
김정은은 백두 혈통으로서 존경을 제대로 못 받았다고 느낄 때 분노를 폭발시킨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다. 고모부 장성택이 자신에 대해 건성으로 박수 쳤다고 숙청했고, 인민무력부장 현영철이 졸았다고 처형했다. 지난 여름 압록강 수해 지역을 방문했을 때는 천재지변 피해를 현지 책임자에게 뒤집어씌워 즉결 처분했다. 김정은식 공개 처형은 잔인하다. 기관총이나 대공포까지 사용해 시신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든다.
김정은은 1400㎞에 달하는 중국과의 국경에 철책선을 설치했다. 또 남북 연결 도로망을 폭파하고 군사분계선 248㎞에 지뢰를 새로 매설하기도 했다. 북한 주민 탈출과 외래 문화 유입 차단을 위한 것이라지만 정신 병리 현상으로 비치기도 한다.
김정은이 자기 정신 상태를 제어하지 못한 상태에서 꺼내드는 좌충우돌식 도발에 대해 심리전으로 맞서는 것이 옳은 처방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된 북한군의 전사·부상·이탈이 대규모로 발생하면 북한 주민들에게는 상당한 심리적 동요가 있을 것이다. 김정은 개인에 대한 불만도 고조될 것이다.
북한 내부에서는 조·중 국경이나 남측 군사분계선 장벽의 철조망 설치로 우물 안 개구리 신세인 주민들의 불만이 누적돼 있다. 이런 상태에서 북한에 사이버 드론 전단을 보내는 식의 심리전을 전개할 경우 김정은 정권에 위협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북한의 러시아 파병에 대해 살상 무기 제공, 부대 파견 같은 물리적 대응 카드를 꺼내드는 것과 비교하면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효과는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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