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AI 안보각서’에 서명했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AI 기술을 핵무기처럼 국가가 직접 나서 전략적으로 지원하고 통제하겠다는 의미이다. 이런 추세라면 AI 원천기술 보유국들이 AI 확산 금지 조약을 체결하여 후발국의 관련 기술 개발을 통제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미국의 AI 안보각서는 AI 인재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전 세계 특급 인재를 미국으로 데려오는 데 모든 법적 권한을 사용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AI 기술 경쟁에서 우수 전문 인력의 확보는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이다. AI 전문 인력은 초·중·고에서의 소프트웨어(SW) 기초 교육과 대학·대학원에서의 전공 교육을 통해 양성된다. 초등학교에서 대학원에 이르는 교육 파이프라인이 원활히 작동해야 우수한 AI 인재를 성공적으로 배출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AI 인력 양성 시스템은 기형적 가분수 형태를 갖고 있어 역량 있는 AI 인재를 배출하기 매우 어려운 구조다. 학부와 대학원에서는 SW중심대학, AI 대학원 등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사업으로 탄탄하게 구축되어 있지만, 지식의 토대를 구축하는 단계인 초·중·고에서의 소프트웨어 교육은 부실하고 척박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리나라 초등학생은 6년간 5892시간의 수업을 듣는다. 이 중 소프트웨어를 배우는 시간은 통틀어 17시간에 불과하다. 교과과정에서 과목에 할당된 수업시간 수는 해당 과목에 책정된 예산이다. 총 수업시간을 1만원으로 환산하면, 소프트웨어 교육에 쓰는 예산은 27원에 불과한 셈이다. 그런데 교육부는 소프트웨어 수업 시수를 내년부터 두 배로 늘리며 “디지털 시대의 주인공이 될 100만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발표한다. 1만원 중 27원 지출하던 것을 54원으로 인상하는 수준이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다는 예수님의 오병이어 기적과 다를 바 없다. 대한민국의 AI 인재 양성은 기적이 일어나야 가능한 상황이다.
인간은 유아기에 습득한 언어로 평생 생각하고 꿈꾸고 소통한다. 어린 자식을 대학 등록금보다 비싼 수업료를 내는 영어 유치원에 보내는 것 역시 언어 교육에 있어 조기 교육이 중요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교육도 프로그래밍 언어 교육에서 시작한다. 조기 교육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 메타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모두 어렸을 적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시작한 사람들이다. 주요 국가들이 공교육에서 소프트웨어 교육 비중을 앞다투어 높이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다. 영국, 인도, 중국, 일본 등은 초·중·고를 합쳐 평균 300시간을 소프트웨어 교육에 할당하고 있다.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교육 시수는 현재 총 51시간이다.
1만원 중 27원의 투자, 경쟁국 대비 20%에도 못 미치는 교육량. 이것이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공교육의 민낯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7년까지 미·중에 이어 AI 3대 강국이 되겠다는 비전을 선포했다. 공부는 다른 이들의 반의 반도 안 하면서 “목표! 전교 3등!”을 외친다. 뿌린 만큼 거둔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길 때다. 인재 확보를 논하려면, 전교 3등을 외치려면, 우선 공교육에서의 소프트웨어 공부 시간부터 최소한 경쟁국만큼은 늘려야 한다. 성적이 올라갈지는 그다음에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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