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엔비디아 AI(인공지능) 서밋’.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AI를 얹은 5G망을 인프라로 이용해 통신 이용자들에게 ‘개인 AI 비서’를 두는 것과 같은 서비스 제공 전략을 발표했다. 엔비디아와 손잡고 기존 통신망 이용을 최적화하는 AI 인프라를 통해 5500만명에게 다양한 서비스는 물론이고, 자율주행, 스마트 공장 등과 같은 산업용 AI 응용 서비스도 선보이겠다고 했다. 더 나아가 2026년 이후 글로벌 시장 진출 비전도 제시했다.
손 회장의 구상은 AI 비서(에이전트)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린다는 예측에 걸맞은 비즈니스 모델이다. 동시에 이제까지 통신 사업자가 많은 투자를 들여 새로운 망을 깔아도 정작 큰 수익은 이를 잘 활용하는 구글과 같은 인터넷 기업이 거두었다는 비판을 뒤집는 새로운 공격 카드인 셈이다.
그동안 통신사업자들은 초고속 통신망을 거의 공짜로 이용하는 인터넷 기업들에 대해 국내외 망 중립성 논쟁을 일으키면서 수익을 더 거두려고 노력해왔다. 이번 도쿄에서 손 회장의 AI 서비스 전략 발표는 통신 사업뿐 아니라 향후 AI 수익 모델과 시장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학계에서는 4차 산업혁명의 성공을 위한 ABC로 인공지능(AI), 빅데이터(Big Data), 클라우드(Cloud)를 꼽는다. 빅데이터를 통해 새로운 서비스가 개발되고 이를 원활하게 지원하기 위한 인프라로 클라우드 기반이 필요했고, AI가 이를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는 순차적 논리였다. 이제는 AI가 본격적으로 산업에 접목되면서 정부·기업에 동시다발적인 ABC 숙제 풀이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역시 대통령 직속 국가AI위원회를 설치한 바 있다.
2016년 구글의 알파고와 이세돌 간 바둑 대결에서 AI가 대중에게 첫선을 보이면서 비록 인간에게 한 판을 지기도 한 그때의 초짜 AI는 잊어야 한다. 신약 개발, 임상 치료 등에서 AI 활용은 이미 엄청난 경제적 성과를 내고 있다. 더 중요한 사실은 미국 중심으로 그런 수익 비즈니스가 너무나 빨리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빅테크에 대한 AI규제는 많이 없어지고 AI 기술 주도권은 미국 손에 더 단단히 잡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3일 도쿄에서 열린 엔비디아 AI 서밋에서의 손정의 회장 발표는 미국 주도의 이런 AI 흐름 속에서 나름 일본이 제일 잘할 수 있는 AI 비즈니스 방향을 시대적 승부사 손 회장이 직접 선보인 것으로 봐야 한다. 즉 그동안 잘나갔던 일본의 전자·로봇 등의 첨단 제조업이 지난 30년간 뒤처진 소프트웨어 탓에 미국과 중국에 추월당했지만 기존의 전문성에 AI를 결합, 일본을 리셋하고 완전히 새로운 사업 기회를 잡겠다는 발표는 AI 인프라망을 기반으로 향후 일본이 제일 잘할 수 있는 맞춤형 AI 시장을 타깃으로 한 것이다.
우리 나름의 독자적 AI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데이터 센터를 확충해서 AI 주권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중요하다. 하지만 정작 글로벌 시장은 우리에게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빠른 전략적 선택과 집중을 요구하고 있다. 인터넷이 그랬듯이 AI도 한때의 유행어가 아니다. AI 3대 강국을 지향한다면 우리가 제일 잘할 수 있는 AI 응용 부문부터 빨리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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