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필자가 일하고 있는 은행 지점에 한 노신사가 다가왔다. 그는 ‘6·25 참전 국가유공자’란 글자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호국 용사라는 걸 알아차리고 문을 열어드렸다. 필자가 “6·25전쟁에 참전하셨군요”라고 하자, 그는 “켈로 부대 차출 후 전쟁에 투입됐어”라고 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올해는 6·25전쟁이 발발한 지 74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달에는 건군 제76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과 서울에서 시가행진이 있었는데, 카퍼레이드 1호차에는 6·25 참전 용사인 유재식(92)옹이 탑승했다. 거리에 나온 시민들은 아낌없이 박수를 쳤다.
지난달 말까지 생존해 있는 6·25 참전 용사는 3만4572명이다. 그중 90세 이상이 89%다. 오늘날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을 만들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된 건 바로 이분들의 희생 덕분이었다. 가장 빛나는 예우와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안타까운 사실은 6·25 참전 용사들이 연 평균 8000명 가까이 세상을 등지고 있고,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정부와 국회는 물론 국민이 이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지금처럼 단순히 참전 명예 수당을 비롯한 금전적인 지원과 일부 복지 지원만 해주면 되는 것일까? 그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은 없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이분들이 남은 생애에 잊지 못할 예우를 국가와 국민이 해주면 그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정부는 항상 국민이 체감하는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고령의 전쟁 영웅들을 위해 체감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호국 용사 중 거동이 가능한 분들이라도 초청해 성대한 행사를 마련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행사가 열린다면 노병들은 눈을 감을 때까지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 바쳐 싸운 나를 인정해 주는구나”라는 자긍심을 갖게 될 것이다.
그래서 구체적인 정책을 제안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별로 매년 6월 25일이면 개최하던 초청 행사를 정부에서 통합해 가칭 ‘6·25 참전 호국 영웅 초청 감사 잔치 한마당’을 개최했으면 한다. 이 행사가 추진된다면 국민 모두는 정부에 무한한 신뢰를 보낼 것이다.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6·25전쟁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계기를 심어주고, 안보 의식을 제고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 주변에서 가끔씩 만날 수 있었던 우리의 자랑스러운 호국 영웅들을 몇 년 후면 영영 볼 수 없게 된다. 방송에서 “6·25참전 마지막 생존 호국 용사 작고”라는 슬픈 소식을 접하기 전에 정부와 국민은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운 호국 영웅들을 예우할 진정한 보훈이 무엇인지 되새겨 볼 때다. 더 늦기 전에 행동으로 보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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