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나라에서 경제·산업 활동이 지정학적 위치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동아시아 끝자락의 한국은 거대한 중국과 러시아로 막혀 있고, 북한의 핵 위협에 시달린다. 태평양도 일본을 돌아가야 열린다. 우리와 달리 유럽·아프리카·남미·중동·동남아의 대부분 국가들은 여러 나라와 국경이 서로 연결돼 있는 연합 대륙이다.
연합 대륙 국가들은 생존 전략으로 해외에서 국부와 인재를 유입시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 실행 방법 중 중요한 제도적 변화가 바로 상속세의 폐지다. 부를 쌓을 기회를 제공하고, 일궈낸 재산에 세금을 덜 매기겠다는 유인책을 써서 돈과 인재를 끌어당기는 것이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미국 옆에서 세계 부유층의 투자 대상국으로 부상했다. 북유럽의 노르웨이는 세계 최대 국부 펀드를 운영 중이다.
이뿐만 아니다. 싱가포르도 상속세를 면제하고 낮은 소득세율을 유지한 덕분에 외국인의 투자 이민이 활발하다. 호주와 뉴질랜드도 멀리 떨어진 남반구라는 약점을 상속세 폐지로 보완해 세계 각국의 투자 이민을 흡수하고 있다. 각 대륙의 변방이나 소규모 국가인 이스라엘·포르투갈·룩셈부르크·오스트리아·슬로베니아·조지아에도 상속세가 없다.
이 밖에 그리스·튀르키예·아이슬란드·폴란드·이탈리아·스위스·대만·홍콩·베트남·브라질 등은 상속세율이 10% 이하로 거의 면제에 가깝다. 대국인 중국·러시아·인도도 상속세가 없다. 미국도 상속 공제액을 약 170억원(부부 합계 340억)으로 늘려, 웬만한 중소기업 경영자도 상속세 걱정 없이 가족 간 재산 승계가 가능한 길을 터놓았다. 전 세계가 상속세 면제 전쟁에 뛰어든 형국이다.
그러나 유독 우리나라는 상속·증여 최고세율을 일본(55%) 다음인 50%(대주주는 최고 60%)로 유지 중이다. 일본은 세계 2위 경제 대국에서 밀려난 지 오래고, 우리나라도 GDP 규모 순위가 내려가는 중이다. 국제화 시대 동아시아에 치우친 한국으로 외국인 투자와 해외 투자금 및 외국인 인재를 유치하려면 세금 가운데 사람의 인생에서 최종적이고 수동적인 성격이 강한 상속·증여세를 대폭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 법인세·소득세·부가세·취득세·재산세 같은 다른 능동적인 활동 세금은 세수 확보를 위해서도 유지해야 하고, 세율이 높다고 해도 기업 활동을 국내에서 하는 한 감내할 수밖에 없어 상속·증여세와 성격이 다르다.
다른 세금과 달리 상속·증여세는 인생과 경제활동의 최종 세금으로서 국가 간의 해외 인재 및 자본 유치 전략에 따라 완전 면제국, 세율 10% 이하 저과세국, 큰 폭의 상속공제 적용국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아직 한국은 상속세율이 높고 가족 공제 등은 10억원 내외에 그쳐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과중하다. 이에 따라 많은 재산가와 중견기업 경영자가 해외로 탈출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아직 대기업과 중소 자영업자들은 국내에 많지만 대기업의 글로벌 아웃소싱으로 1차 협력 업체인 중견기업과 2~3차 납품 업체인 중소기업들이 해외로 제법 떠났다. 국부, 인재, 일자리의 해외 유출이 누적되고 있는 셈이다.
세상을 넓게 봐야 한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한쪽에 치우친 주변 변방에 위치하면서 경제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 이런 여건에서 무슨 배짱으로 높은 상속세를 그대로 두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제라도 상속세 부담을 크게 낮춰서 기업인들이 해외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도록 막는 것이 번영을 도모하는 전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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