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은 학생들이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는 소중한 기간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학생은 방학을 학기 중보다 바쁜 사교육 시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나라 초중고 학생들이 방학의 본래 의미를 잃어버린 데는 사교육의 영향이 크다. 한 취업 포털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7명이 방학 중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키며 월평균 53만원을 지출한다. 사교육 업체들은 방학 기간 심화 학습 프로그램과 특강을 집중적으로 운영하며, 상위권 성적을 미끼로 학생과 학부모들의 경쟁심을 유발한다. 한국교육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학생들의 약 60%가 방학 동안 학습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방학 중 해외여행과 어학연수의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 다양한 경험과 글로벌 시각을 제공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부모 소득 격차로 인한 위화감이 조성되고 있다. 학생들은 방학마저 ‘제2의 학교생활’로 느끼며 학습에 대한 흥미를 잃는 우(愚)를 범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방학을 학생들이 재충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 시간으로 활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주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과열된 교육열이 빚은 K교육의 어두운 그늘이다. 방학 중 과도한 학습 스케줄은 학생들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은 이미 여러 연구 논문이 방증한다.

성취에 대한 과도한 압박은 자아 존중감을 낮추고 학습에 대한 흥미를 잃게 만들면서 전반적인 학습 동기를 약화시킨다. 학생들이 번아웃에 이를 위험도 크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우리나라 초중고 학생의 사교육비 총액은 약 27조1000억원에 달했다. 평균 사교육비는 초등학생 39만8000원, 중학생 44만9000원, 고등학생 49만1000원이다. 특히 저소득층 가정은 자녀 교육을 위해 필수적인 생활비를 줄이면서까지 사교육비를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고소득층 가정과의 교육 격차가 더 커지게 마련이다. 이는 사회적 불평등의 고착화, 국민 통합 저해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혁명적 수준의 공교육 제도 개선이라는 숙제를 우리 사회에 던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정책적 개입’과 ‘사회적 인식 변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만 가능하다. 우선 공교육의 질을 높여 사교육 의존도를 낮추는 일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 같은 이상(理想)은 이론적으로 타당하지만, 현실적으로 학부모에게는 진부한 구두선에 불과하다. 눈앞에 보이는 당장의 이익이 언덕 위의 구름보다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필자는 대학 입시에 교과과정뿐만 아니라 자율 활동, 동아리 활동, 봉사 활동, 진로 활동 등 4가지 창의적 체험 활동이 대폭 반영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창의적 체험 활동은 학생들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창의적 사고, 인성, 사회적 역량을 함양하도록 돕는 중요한 활동이다. 물론 창의적 체험 활동을 대입에 반영하는 제도가 정착되려면 공정성이 가장 중요하다.

공정성이 담보된다면, 학생들도 방학다운 방학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공교육은 모든 학생의 균질성을 기반으로 운영되어 왔지만, 이제는 학생 개개인의 다양성을 폭넓게 인정하는 새로운 공교육의 버전이 요구된다. 뉴 노멀은 항상 시끄러움을 동반하기 때문에, 이를 구현하기 위한 정교한 정책 설계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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