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 베이징 특파원

한국 제주도에서 서쪽으로 곧장 가면 중국 장쑤(江蘇)성 옌청(鹽城)시가 있다. 인구 720만명, 국내총생산(GDP) 5700억위안(약 100조원)으로 경제력 기준 중국 38위 도시다. 옌청이 성장한 데는 SK, LG, 기아차 등 한국 기업의 투자가 한몫했다. 한국 기업이 옌청에 투자한 프로젝트는 800여개, 총투자액은 80억달러(약 9조5000억원)다. 옌청시 일인자인 다이위안(戴源·58) 당서기가 지난 23일부터 27일까지 한국을 찾았다. 코로나 이후 한국을 방문한 첫 중국 지방정부 대표단이다.

한국 기업인들을 만나 10월 말 옌청에서 열리는 투자 설명회에 한국 기업이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청했다. 한국에서는 “미·중 갈등에 다급해진 중국이 한국에 구애한다”며 평가절하하는 해석도 적지 않았다. 그러다 중국 인터넷에서 다이 서기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300개가 넘는 중국 지방도시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지만 그의 시찰·출장 일정은 ‘코로나 이후 경제 살리기’에 올인하고 있었다. 그는 중국에서 여전히 코로나가 심각했던 지난 2월을 시작으로 거의 매달 대기업부터 중소·벤처기업을 방문해 생산 상황을 점검했다. “기업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최대한 제공하고 문제는 구체적으로 해결하라”고 했다. 7월 중순에는 공무원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200㎞ 떨어진 장쑤성 난퉁(南通)시를 찾았다. 상하이 인근인 난퉁은 옌청보다 경제 규모가 2배 큰 도시다. 그는 7월 말 시 간부 전체를 모아 놓고 “우리는 난퉁만 못하다”며 “각 부서는 난퉁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찾으라”고 지시했다.

옌청에 대해 “양에서는 중류(中流), 질에서는 하류(下流)”라는 표현을 써가며 “우리 손발을 묶는 것은 외부 조건이 아니라 우리 머릿속에 있는 무형의 결박”이라고 했다. 옌청을 취재한 한 중국 기자는 “공무원들 사이에서 도시가 계속 발전해야 한다는 데 대한 압박감과 긴장감이 느껴졌다”고 했다.

주말 베이징 거리에 갔더니 마스크 안 쓴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시내 상가에 가보면 코로나 충격에 여전히 문 닫은 곳이 적지 않았다. 조만간 한국에도 코로나 자체보다 코로나 이후 경제 살리기가 더 고민인 시점이 올 것이다.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자체가 기를 쓰고 달려들어야 할 문제다.

다이 서기는 4박 5일간 한국 기업인들을 만나기 위해 전세기를 띄우고 최소 3차례 코로나 검사와 격리 관찰을 받는 수고를 감수했다.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했고 기계공장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기업에 대해 남다른 관심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출장 일정을 보면서 한국의 도지사·시장·군수 중 누가 다이 서기처럼 코로나 이후를 고민하며 국내외 기업을 찾고 도시 발전을 위해 뛸 수 있고, 뛰고 있는지 새삼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