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화와 엔화를 정리하고 있다. 2022.4.20/ News1

지난 29일 아침 아사히신문에 ‘엔화 비관론, 1달러에 500엔(약 4900원)으로 추락, 일본 국채 투매 올 수도’란 기사가 실렸다. 일본에서 ‘전설의 외환 딜러’ 소리를 듣는 후지마키 다케시 전(前) 모건은행 도쿄 지국장 인터뷰였다. 그의 전망은 끔찍했다. “1달러에 400~500엔 수준이 돼도, 이상할 게 없다고 본다.” 현재 1달러 130엔까지 떨어진 엔화 가치가 3분의 1 이하로 더 추락한다는 것이다.

20여 년 전 우리나라의 외환 위기 때 최악 환율이 1달러=1995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과도한 비관론이다. 하지만 이날 요미우리신문과 니혼게이자이신문도 1면 톱으로 “엔화, 1달러=130엔까지 치솟았다”고 우려했다. 연초만 해도 1달러=100엔 수준이었으니 이례적 급등임은 사실이다.

이런 비관론은 과도하지만 일리가 있다. 미국이 금리 대폭 인상을 예고한 마당에 일본은행은 ‘무제한 양적 완화’라는 정반대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은 매일 일본 국채(10년물)를 이율 0.25%에 무제한 매입하고 있다. 국채 이자가 0.25%를 못 넘게 끝까지 사주는 것이다. 일본은행이 국채 구매 시 지불한 엔화는 시장으로 흘러간다. 미국은 달러를 회수하는데 일본이 엔화 공급량을 늘리니, 엔화 가치가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일본은행이 왜 국채 이율 0.25% 방어에 사활을 걸까. 아사히신문은 일본은행이 9년간 지속한 ‘돈 풀기’의 덫에 걸렸다고 분석한다. 경기 활성화에 나선 정권을 위해 일본은행은 정부가 발행한 약 520조엔(약 5060조원)이란 엄청난 국채를 저금리로 떠안았다. 이 과정에서 왜곡이 발생했다. 일본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면 시중은행이 구매하고 다시 일본은행이 시중은행에서 저리로 재구매했다. 그런데 시중은행들이 국채 팔고 받은 돈을 다시 일본은행에 당좌예금으로 맡겼다. 현재는 국채 이자와 당좌예금 금리가 비슷하니 괜찮지만 금리가 오르면 일본은행은 곤란해진다. 금리가 1%p만 올라도 일본은행이 시중은행에 줄 연 이자가 대략 5조엔 정도 는다. 단순 산수(算數)다. 세상 최고 부자라는 일본은행이 채무 과다에 빠지는 최악 순간이 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나쁜 엔저’는 고스란히 일본인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편의점의 캔맥주와 식빵부터 목욕탕 입장료, 주택 임대료까지 가격이 들썩이고 생활 물가가 급등하고 있다.

살얼음판에 선 엔화를 옆에서 지켜보는 원화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원화 가치도 지속 하락, 1달러에 1270원 안팎이다. 불안하다. 경제 불확실성이 최고조인 상황에서 10일 출범하는 새 정부는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지난달 방일한 한일정책협의대표단은 일본 주요 인사를 만나 줄곧 한일 관계 개선을 강조했다. 숱한 의제 중에 환율 불안에 따른 한일 대응 협력 방안도 한 줄 있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