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의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 인근에 있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백화점 갤러리 라파예트 베를린점 ./galeries lafayette berlin

프랑스의 대표적인 백화점 기업 갤러리 라파예트가 2024년 말 독일 베를린에서 철수한다. 1996년 문을 연 이곳은 상징적 의미가 큰 곳이다. 백화점이 위치한 거리 인근의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은 동독과 서독의 국경 지역이었고, 당시 통일 후 어떤 방향으로 이 거리를 개발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컸다. 지금은 베를린에 있는 연방 의회와 연방 정부도 아직 본에 있던 때였다. 독일 매체 슈피겔은 라파예트 백화점 개장을 앞두고 “베를린이 장벽 도시에서 대도시로 가는 먼지 많은 길에서 또 하나의 이정표를 통과했다”고 썼다. 다양한 종류의 프랑스 물품이 구비된 이곳 지하 식품매장은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가 자주 장을 보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백화점이 떠나는 이유에 대한 공식 입장은 나오지 않았다. 근본적으로는 소매업의 위기가 꼽힌다. 베를린상공회의소 로버트 뤼켈 부회장은 “온라인 쇼핑, 팬데믹, 전반적인 경제 상황 악화로 오프라인 소매업에 큰 도전이 되고 있고 일부는 그 존립을 위협받고 있다”고 했다. 프리드리히슈트라세를 자동차 없는 거리로 만들겠다며 통행을 금지했던 베를린시의 정책, 매주 일요일 마트와 백화점 등이 문을 닫는 독일의 규제도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이 거리 인근의 도시 개발이 실패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인상 깊었던 점은 앞으로 이 부지를 어떻게 활용할까 하는 것이다. 지난주 라파예트 백화점 철수가 공식화되자 베를린 주정부 문화위원회는 이곳을 도서관으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공공도서관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고, 성인 교육센터·아트홀 등과 함께 활용하면 주변 상권을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논의에 대해 일간 베를리너 자이퉁은 “소매업이 하지 못한 일을 문화가 해낼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느냐”고 했고, 주간 디차이트는 “국민의 폭넓은 교육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면 찬성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베를린에는 크고 작은 규모의 도서관이 80여 곳 있고, 대학 도서관에도 누구나 출입이 가능하다. 기자가 사는 곳에서도 반경 3㎞ 안에 도서관이 3곳이다. 옛 건축물을 그대로 이용한 프로이센 문화재단의 주립 도서관은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네모반듯한 구조의 훔볼트 대학 도서관, 뇌 모양을 형상화한 베를린 자유대학의 도서관 등 다양한 구조의 도서관에 가는 재미도 있다.

라파예트 백화점 부지에 도서관이 실제로 들어올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법안이 주 의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야당인 사민당이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논의가 이뤄지는 것 자체가 베를린 사람들에게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아닐까. 도서관 건축에 찬성한 조 치알로 상원의원은 “도서관은 집과 직장 사이의 장소이고, 혼자 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배우는 곳”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