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유럽 국가의 지한파 외교관을 만나면 으레 나오는 질문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윤석열 대통령이 조만간 탄핵될 것 같냐”다. 질문하는 이들 상당수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시도,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거론한다. 그들 눈에 한국의 대통령 탄핵은 ‘일상적 정치 과정’ 중 하나다. 파리의 한 외교관은 “8년 전과 여러 가지가 비슷하다”며 어디선가 짜놓은 ‘탄핵 시나리오’가 착착 진행된다고 믿는 듯했다.

둘째 질문은 “이재명 의원이 집권하면 한·미, 한·유럽 관계가 어떻게 될 것 같냐”는 것이다. 이미 두 가지 전제가 깔린 질문이다. 일단 한국에 탄핵 정국이 닥치면 이 의원이 다음번 대선 주자로 유력하다는 것, 또 그의 외교 정책은 지금과는 크게 다를 것이란 예상이다. 이 의원의 외교 안보관에 대한 자세한 이해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한국의 ‘진보 좌파’ 진영 정치인은 대부분 반미·반서방 민족주의자란 인식이 강한 듯했다.

이런 질문이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한국은 이번 정부 들어 부쩍 미국·유럽과 유대를 강화하며 ‘서방의 일원’이란 정체성을 강화해왔다. 이런 행보는 러시아의 안보 위협이 급부상하고 중국과의 경제적 마찰이 극심해져 가는 와중에 서방 외교 전략가들에게 분명히 좋은 신호였다. 세계적인 산업 생산력과 군사력을 갖춘 한국은 게임의 판세를 기울게 할 ‘게임 체인저’가 될 잠재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한국이 믿고 의지할 만한 ‘서방의 일원’인가에 대해선 여전한 의문이 있는 듯하다. 한국이 경제·사회·문화적으로는 선진국이지만, 정치·외교적으로는 아직 불안정한 나라, 지금은 우리 편이지만 언제든 정권이 바뀌고 태도가 급변할 수 있는 나라란 우려가 있어 보인다. 브뤼셀의 한 외교관은 “정부가 바뀌면 외교 정책도 변화하는 게 당연하나, 한국은 그 진폭(swing)이 큰 편”이라고 했다. 점잖게 돌려 말했을 뿐이지 ‘한국은 언제든, 누구에게나 등을 돌릴 수 있는 나라’라고 보는 듯했다.

유럽의 ‘엘리트’들이 한국 정치와 정책 당국의 수준을 너무 낮춰 보는 게 아닌가 싶어 불쾌하기도 하다. 당장 미국만 해도 11월 대선 결과에 따라 기존 외교 정책이 뒤집어질 가능성이 크지 않은가. 그러나 대한민국이 지난 20여 년간 대북 관계와 한·일 관계, 미국과 동맹 관계 등에서 여러 번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 과정이 주변국들의 신뢰를 깎아먹었던 것도 사실이다.

유럽인의 눈에 한국은 경제적으론 ‘탈아(脫亞)’ 했지만 민주정치의 성숙성에선 아직 ‘입구(入歐)’의 수준에 달하지 못한 나라로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서방 7국(G7) 새 멤버 참여가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일까. ‘정치는 4류, 관료는 3류, 기업은 2류’라는 29년 전 평가가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 싶어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