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경제학상의 영예는 국가 간 불평등 연구에 기여한 다론 아제모을루(57), 사이먼 존슨(61), 제임스 A 로빈슨(64) 등 3인에게 돌아갔다. /노벨위원회

올해 노벨 경제학상 공동 수상자 회견은 시작부터 한국 이야기였다. 아제모을루 MIT 교수는 “한국 경제는 건강하게 성장했다”고 했고, 같은 대학 존슨 교수는 “가난했던 한국이 이뤄낸 업적이 놀랍다”고 했다. 로빈슨 시카고대 교수도 현지 인터뷰를 통해 “한국은 포용적 사회로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뤘다”고 했다. 전 세계 기자들의 질문에 수상자 세 명이 입 맞춘 듯 ‘한국의 성공’을 예찬하는 모습이 놀랍고도 생경했다.

아제모을루와 로빈슨을 세계적 석학 반열에 올려놓고 노벨상까지 안긴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국가 운명을 정치·사회 제도가 결정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를 택한 한국과 1인 독재 국가 북한의 엇갈린 경제 발전상을 주요 근거로 삼는다. 사유 재산을 인정하고 민주공화제를 이룬 ‘포용적 제도’ 국가 한국은 발전한 반면, 권력과 부(富)가 1인 독재자에게 집중되는 ‘착취적 제도’를 선택한 북한은 쇠퇴했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해소되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저자들은 한국이 1980년대 민주화를 거친 덕분에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 이전의 박정희 정권은 소련·북한과 같은 ‘착취적 제도’를 택한 때로 그린다. 이 책이 출간된 2012년 이후 한국의 진보 진영·학계가 앞다퉈 이 책을 인용했던 건 이 때문이었다. 저자들은 당시를 ‘권위주의적 성장’이라고 부르면서, 박 대통령의 국가 주도 개발 정책이 가져온 경제 발전 자체를 부인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그 시기 한국이 이뤄낸 급격한 성장을 제대로 설명해내지 못했다.

1968년 7월 9일 경부고속도로 길사터널 공사 구간을 시찰하며 지시를 내리는 박정희 대통령. /조선일보 DB

노벨상 발표날 어렵게 성사된 공저자 로빈슨 교수와 인터뷰에서 그가 먼저 박정희 이야기를 꺼낸 건 뜻밖이었다. 로빈슨은 “요즘 박 대통령 시절의 수출 주도 정책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의 박 대통령 기념관을 직접 방문해가면서 그의 발자취를 훑고 있다고 했다. 그는 수차례 ‘정말 성공적인 정책’이라며 당시 한국의 수출 정책이 다른 개발도상국에도 유효한 모델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의 ‘독재’ 논란에 대해 묻자 단호하게 답했다. “그는 독재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국가 발전’에 정말 집착하고 집착했습니다. 세계 역사에서 지도자가 이렇게 성공한 사례는 많지 않습니다.” 책을 쓴 이후에 그의 생각이 바뀐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한국 경제 발전의 공(功)조차 부정하면서 그를 과도하게 매도하는 우리 내부 상황을 의식하고 있는 듯 보였다.

로빈슨은 “한국 경제가 엄청나게 성장한 건 박 대통령 덕분이고, 그때의 폭발적 발전을 지탱할 수 있었던 힘은 이후의 제도(민주화)였다”고 했다. 그에게 박정희의 ‘한강의 기적’과 이후 김영삼·김대중의 ‘민주화’는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우리 스스로가 과거를 깎아내리고 서로를 손가락질하는 동안 먼 나라 외국 학자가 한국의 굴곡진 역사를 더 충실히 설명하고 있었다. 그 설명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우리가 해왔어야 하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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