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일본 나라(奈良)시. 도시 한복판에 차려진 무대에서 고운 한복을 입고 쪽찐 머리를 한 여성이 마이크를 들었다. “아리랑 아리랑 홀로아리랑….” 한·중·일 문화도시 교류 사업 일환으로 열린 ‘가스가노 음악제’에 제주를 대표해 참석한 ‘국악인’ 양지은이었다. 이 영상이 유튜브에 퍼지면서 지난해 그는 한 지상파 예능에 출연했다. “처음엔 거절했어요. ‘미스트롯' 출연을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방송을 미리 경험한다고 생각하라’는 설득에 결국 나갔어요.”
최근 ‘미스트롯2’가 막을 내리면서 인생의 굴곡을 겪고 제2의 인생에 도전한 이들의 감동적인 사연이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둘러싸고 ‘충격’ ‘의혹’ 같은 단어를 내건 음모론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슈가 된 사건을 짜깁기하거나 자극적 루머를 재생산하는 이른바 ‘사이버 렉카’가 온라인 세상을 질주한다. 견인차(레커차)가 교통사고 차량을 먼저 차지하려고 경쟁하는 것처럼 인터넷에서 조회 수를 올리기 위해 설익은 주장과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퍼뜨리는 이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미스트롯2’ 진(眞) 양지은은 “소속사가 있는데 없는 척했다”는 소문이 만들어졌다. 우연히 나간 방송 출연을 빌미 삼은 것이다. 한 유튜버가 근거 없는 말을 한 것이 일파만파로 퍼졌다. 그가 소속사라고 주장한 회사 측에서 “계약한 적 없다”고 해명했지만, 진위 여부는 전혀 상관없다는 분위기다. 최연소 결승 진출자인 초등학생 김태연도 최근 유튜브에 퍼진 루머 때문에 울먹였다. “가족이 없다” 같은 가짜 뉴스 때문이다. “트로트를 함께 부르며 모두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아홉 살 아이를 채널 조회 수 올리기에 이용한 것이다. ‘미스터트롯' 출신 마스터(심사위원)도 사이버 렉카들의 먹잇감이 됐다. 성별과 나이 고하를 가리지 않고 악성 댓글이 쏟아지고, 엉터리 댓글이 발판이 되어 또 다른 루머가 만들어진다. 반드시 근절해야 할 사이버 폭력이다.
루머 심리학의 대가 니콜라스 디폰조 교수는 “불안과 분노가 루머를 확산하고 퍼트린다”면서 “가십과 루머가 위험한 건 언젠가 그 대상이 자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경고한다. 사람들의 분노를 이용해 콘텐츠를 팔아먹는 분야를 ‘분노 산업(outrage industry)’이라고 지칭하면서 “사실 확인과 정당한 토론의 과정이 배제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허위 사실과 가십을 만들어내는 사이버 렉카는 더 공정하고 정의롭고 공평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 국민이 응당 터뜨려야 할 분노를 갉아먹고 있지는 않은가. ‘일용할 분노’를 양식 삼아 돈벌이에 나서는 이들을 보며 ‘진짜 분노’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