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 사례가 차고 넘치지만, 집값 급등의 책임을 ‘국민 탓’으로 돌릴 줄은 몰랐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28일 부동산 관련 대국민 담화에서 주택 수요자의 ‘상승 기대심리’를 수도권 주택 가격 상승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정부 실정(失政)으로 집값이 오른 게 아니라 시세 차익을 기대하며 집을 사들이는 사람들 때문에 부동산 시장이 불안하다는 것이다.
홍 부총리는 이어 “부동산 시장 안정은 정부 혼자 해낼 수 없다. 국민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함께 협력해야 가능한 일”이라며 ‘공유지의 비극’을 언급했다.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은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개인 때문에 전체가 몰락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이론이다. 홍 부총리의 말이 “집값 잡으려는 정부 노력에 초 치지 말고, 가만히 좀 있으라”는 은근한 협박처럼 들렸다.
“집을 사면 위험하다”며 ‘대놓고’ 으름장도 놓았다. 홍 부총리는 지금 집값이 지나치게 높다며 IMF 외환 위기와 글로벌 금융 위기 때 서울 집값이 18% 이상 내린 사례를 소개했다.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역시 “주택 시장 조정이 예상치보다 큰 폭이 될 수 있다”고 집값 폭락 가능성을 내비쳤다. 정부는 27일엔 IMF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4.3%로 상향 조정한 것을 소개하며 “우리 경제가 코로나 위기를 잘 극복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더니 불과 몇 시간 뒤 주요 경제 부처 수장이 총출동해 ‘역대급’ 경제 위기가 올 수 있다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것이다.
김창룡 경찰청장의 담화는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며 협박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는 “청약통장을 양도하거나 기획 부동산 투기에 가담하는 행위는 반드시 검거되며, 구속까지 될 수 있다”며 “형사처벌되거나 소중한 재산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의하라”고 했다.
돌이켜 보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첫 출발선이 ‘엄포’였다. 2017년 6월 김현미 당시 국토부 장관은 취임 일성으로 ‘투기 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했고, 다주택자를 향해 “사는 집이 아니면 팔라”고 했다. 하지만 다주택자를 겨냥한 갖은 규제 정책에도 집값은 계속 올랐고, 정부는 시종일관 내로남불식 변명을 늘어놓았다. 지난 4년간 집값이 줄기차게 오른 이유는 전(前) 정부 탓이었고, 저금리와 글로벌 유동성 확대 그리고 급격히 늘어난 1인 가구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급기야 ‘이제라도 집을 사지 않으면 영영 무주택자로 남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내 집 마련에 나선 사람들을 투기꾼으로 몰아붙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부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부글부글 끓는 부동산 민심에 기름을 끼얹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는지 궁금하다. “무능하면 염치라도 있어라”는 한 네티즌의 댓글이 대다수 국민의 심경을 대변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