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신한은행 서울 월계동지점 앞에서 동네 주민 50여 명이 시위를 벌였다. 대부분 고령자들이었다. 35년간 이용해온 이 지점이 두 달 후 폐점되고 무인형 점포로 바뀐다는 소식에 다들 분노했다. 대체 점포인 장위동지점은 버스를 한번 갈아타고 25분은 가야 한다. 모바일·온라인 거래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자들로서는 화가 날 법하다.
은행 지점이 사라지는 건 피할 수 없는 변화다. 기술 발전과 산업 구조 변화로 은행들은 창구에서 대면하는 기존 영업 방식을 고집하기 어렵다. 실제로 거의 대부분 거래가 온라인으로 이뤄지고 있다. 은행들이 거액의 지점 임차료를 치르는 건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기를 하는 셈이다. 그렇게 무겁게 달리면 실물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아 날렵하게 뛰는 인터넷은행이나 빅테크에 금세 추월당한다. 최근 5년 사이에 은행 지점은 약 1000개가 사라졌다. 소멸 속도는 빨라질 것이다.
대형 시중은행의 한 지점장에게 물어봤더니 “변화를 거스를 수는 없지만 주된 수익원인 나이 든 고객들을 외면하는 것 아닌가 하는 찜찜함이 있다”고 했다. 국내 시중은행들은 단순한 이자 장사로 돈을 번다. 지점 창구를 찾아오는 중장년층이 수익을 주로 키워주는데, 이들을 홀대한다는 미안함이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지점을 줄이는 게 불가피하더라도 디지털 문화에 익숙지 않은 고령자들이 불편과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최대한 아이디어를 내는 게 장사의 도리상 옳다. 미국에서는 수퍼마켓 안의 작은 은행 지점(In-store branch)이 늘고 있다. 지난해 미국 PNC은행은 ‘1인 이동형 지점’을 만들어 은행원 한 명이 돌아다니며 고객을 만나는 제도를 만들었다.
영국은 우체국 안에 여러 은행의 창구를 입점시킨 형태의 공동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또는 우체국 안에 은행 창구를 하나만 만들어놓되, 5개 은행이 주중에 하루씩 돌아가며 은행원들을 한 명씩 배치하는 방식도 시범 도입했다. 고령화가 심각한 일본에서도 지방은행들이 한 점포를 공동으로 임차해 사용하는 방식으로 비용을 줄이되, 지점은 유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국내에서도 공동 점포를 만들어 보려는 TF(태스크포스)가 올해 출범했다. 그러나 거의 진척이 없다. 은행들은 이해관계가 달라 의견을 모으지 못하고 있다. 금융 당국이나 은행연합회는 “강제로 할 순 없지 않으냐”며 뒷짐을 지고 있다.
신한은행 월계동지점 앞 시위는 한 차례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대안이 나오지 않는다면 고령화와 맞물려 지점 폐쇄가 사회문제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국내 은행들은 고도 성장기에 땀 흘린 이들의 벗이 되면서 함께 성장했다. 이제 고령이 된 그들이 금융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공동 지점과 같은 아이디어를 빨리 실행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