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수사국(FBI) 워싱턴주 지국에서 조폭 수사를 담당하던 요원 B는 지난달 법원에서 보호관찰 2년과 사회봉사 100시간을 선고받았다. 그는 수사 증거품으로 FBI 사무실에 보관돼있던 노트북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몰래 반출한 용의자로 지목돼 감찰을 받았다. 처음엔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결국 본인 소행으로 드러났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연방수사국(FBI) 본부 /로이터 연합뉴스

그는 정부 기관에 허위 진술을 한 혐의로 기소돼 유죄를 선고받았다. 연방 법무부 감찰관실은 그의 실명·혐의·형량 등을 홈페이지에 낱낱이 공개했다. 지난 21일에는 역시 FBI 고위급 요원의 비위 사실이 공개됐다. 이 요원은 특정 인사 채용에 관여했는데 알고 보니 채용된 사람은 아이 양육비를 주고받는 전 배우자였다. 형사 기소가 되지 않아 실명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는 직무와 개인 이해가 상충하지 않도록 한 윤리 규정 위반이라는 점이 확실히 적시돼 징계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FBI는 미국 특유의 강력한 공권력과 법질서를 작동시키는 핵심 수사·사정기관으로 유명하다. 연쇄 식인 살인마를 쫓는 신참내기 여성 FBI 요원의 분투를 그린 ‘양들의 침묵’ 같은 할리우드 범죄 영화, 2001년 9·11 테러 당시 흙먼지가 날리던 건물 붕괴 현장을 누비며 밤샘 수사하는 FBI 요원들의 모습 등으로 대중들에게 인상 깊게 각인된 측면도 있다. 하지만 FBI가 세계적 수사·사정기관의 명성을 이어가는 동력 중 하나는 가혹하리만치 냉정한 자정 시스템이다.

미 법무부 감찰관실은 FBI를 비롯해 연방 검찰과 이민심사관, 교도관 등 강력한 권한을 가진 사정기관 요원들의 감찰·수사·기소·재판 결과를 홈페이지에 차곡차곡 쌓아놓아 일반에 공개한다. 물증을 빼돌리고 발뺌한 FBI 요원의 스토리, 개인 여행에 공용 차량, 스마트폰을 유용한 검찰 지원관, 이민 심사 중 부적절한 언행을 한 담당자, 성 착취 또는 무기 밀매가 들통난 교도관 등의 이야기가 공개돼 있다. 이 사건 파일을 들여다보면 미 권력 기관의 타락상에 혀를 차기보다는, 부끄러움도 무릅쓰고 공개하는 철저한 자정 의지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이런 노력으로 권력 집행자들의 비위를 100% 차단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자정 의지가 철저하다는 신뢰감을 주기엔 충분하다.

이른바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추진하는 쪽을 중심으로 미국 ‘FBI’가 부쩍 자주 소환되고 있다. 검수완박법 통과로 설립될 중대범죄수사청을 ‘한국형 FBI’로 육성하면 된다는 논리다. 묻고 싶다. 강력한 수사 기능 뿐 아니라 국민이 납득할 정도로 자신들의 비위를 철저히 드러낼 수 있는 자정과 감찰 시스템을 갖췄는지, 적어도 도입할 의지는 있는지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또 하나의 부실 수사기관이 꼼수로 졸속 탄생하는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