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일 경기도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첫 번째 정상 회동을 가졌다. 양국 정상이 나란히 한국 반도체 공장을 찾는 자리인 만큼 예우를 갖추기 위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공장 안내를 맡았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공장 안내를 실제로 할 수 있을지 여부는 19일 오후 늦게서야 확정됐다. 양국 정상 일정 때문이 아니다. 20일 재판에 피고인으로 출석해야 하는 이 부회장에게 법원이 이때서야 불출석 허락을 내려서다.
양국 대통령 행사를 하루 앞둔 19일, 이 부회장이 오전부터 방문한 곳은 반도체 공장이 아니라 서울 서초동 법원이었다. 그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 40분까지 서울중앙지법417호 법정에 앉아있었다. 피고인 신문은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날은 물론 지금까지 46차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이 부회장이 법정에서 한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이 부회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이미 560일 이상 수감 생활을 했다. 지금 받고 있는 삼성물산 합병 재판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재판도 사실 국정농단 사건과 맞물려 있다. 이 사안을 단순화하면 이 부회장이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삼성물산 합병을 하기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의 가치를 부풀리는 분식회계를 했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부정 청탁을 했다는 것이다. 재계에서는 상당히 정치적인 사안이라고 보고 있다. 합병 당시 삼바 평가가 적정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은 데다, 실제로 현재 삼바 시가총액은 58조원(코스피 4위)으로 당시 ‘부풀리기’ 논란이 일었던 예상 가치(8조원)의 7배 이상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집권 말기에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면했고, 국정농단 사건 박영수 특검팀의 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박근혜 전 대통령을 찾아간 것도 이 사안이 정치적 문제라는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한 셈이다.
그럼에도 이 부회장은 매주 목요일마다, 그리고 3주에 한 번은 금요일마다 서초동 법원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해외 주요 비즈니스 파트너를 만날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도 법원 재판 일정이다. 만약 법원에서 허락하지 않아 이 부회장이 20일 평택 반도체 공장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더라면, 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뭐라고 설명했을까?
윤 대통령은 당선 직후 경제 단체장들을 만난 자리에서 “기업이 해외에 도전하는 것은 올림픽에 출전하는 국가 대표선수나 다름없다. 운동복도 신발도 좋은 것 입히고 신겨 보내야 하는데, 그동안 모래주머니 달고 메달 따 오라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지금 글로벌 경제·안보·동맹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반도체 전쟁에 뛰어든 이 부회장이 달고 있는 가장 큰 모래주머니는 매주 법원에 출석하는 사법 이슈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