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개방에 앞서 지난 25일 언론에 공개된 청와대 본관 취재를 갔다가 충격을 받았다. 화려해서가 아니다. 너무 ‘올드’해서였다. 방송과 사진을 통해 볼 때는 중후해 보였던 붉은 카펫과 샹들리에, 오크색 난간과 기둥은 ‘사진발’이었다. 집무실과 회의 공간에 놓인 책상과 의자도 현대적인 것과 거리가 멀었다. “제3세계 대통령궁 같네.” 기자들 입에서 탄식이 흘렀다. 낡은 인테리어야 이해할 수 있다. 청와대 본관은 노태우 전 대통령 때인 1991년 준공됐다. 요즘 젊은이들은 질색하는 ‘체리색 몰딩’을 떠올리게 하는 천장도, 번쩍이는 샹들리에도, 로코코 양식을 어설프게 따라한 화장실 수납장도 당시엔 고급 인테리어로 여겨졌을 것이다. 이후 청와대에 입성한 대통령들이 인테리어를 바꾸고 싶었더라도 국민 세금 들이는 일이라 쉽지 않았을지 모른다.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본관 무궁화실이 언론에 공개되고 있다. /뉴스1

참을 수 없이 올드하다고 느낀 건 따로 있었다. 영부인 집무실 겸 접견실로 사용되던 ‘무궁화실’에 이르러서였다. 이승만 전 대통령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부터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까지 역대 대통령 부인 11명의 초상 사진이 벽에 걸려 있었다. 왕의 아내가 ‘국모(國母)’로 불렸던 왕조시대도 아닌데 한 여성이 누군가의 아내라는 이유로 지위를 얻고, 그것이 사진으로 기록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는 사실이 기이하게 낡았다고 느껴졌다.

선대의 초상을 건다는 건 공과(功過)를 되새기기 위해서다. 사진 속 여성들의 업적을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민주화 운동가였던 이희호 여사의 생애마저도 ‘영부인’이라는 칭호에 가려 퇴색된 것 같았다. 그 공간 자체가 “여성의 가장 큰 덕목은 내조”라 웅변하고 있었다. 40대인 기자 눈에도 이런데 페미니즘의 가치를 더 중히 여기는 2030 여성들은 어떨지 궁금했다.

미셸 오바마는 회고록 ‘비커밍’에서 백악관에 처음 들어가던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렇게 썼다. “이 상황에서 중요한 진실은 나와 딸들이 조연일 뿐이라는 점이었다. 우리는 버락에게 주어지는 호화로운 혜택을 나눠 받는 수혜자에 불과했다. (…) 가끔은 집안의 모든 일이 남성 가장의 욕구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옛 시절로 회귀한 것 같은 느낌이었고, 딸들이 그런 상황을 정상으로 여기지 말아야 할 텐데 싶었다.” 미셸은 ‘오바마 부인’이라는 명칭에 커리어우먼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이 묻혀버렸다는 사실을 속상해 했다.

공간은 사고(思考)를 규정한다. 낡은 공간에 있으면 생각마저 낡아진다. 그런 면에서 청와대를 벗어나 영부인실을 없앤 새 정부의 결정은 ‘모던’하게 보인다. 대통령 부인이 집무를 보았다는 책상 앞에 푸른색 가죽 의자가 놓여있었다. 북유럽 유명 리클라이너 브랜드 제품이다. 이날 청와대에서 본 것 중 유일하게 ‘모던’했다. 기묘한 부조화였다.

청와대의 영부인 집무실. 책상 앞에 븍유럽 브랜드 제품인 푸른 가죽 의자가 놓여있다. /곽아람 기자


청와대 영부인 집무실. /곽아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