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부터 30년 넘게 국민연금을 부어왔어요. 물가가 올라서 한 달 177만원 받아봤자 노부부 살기엔 빠듯한데, 이것도 수입이라고 건보료까지 내라고 하네요.”
정부가 9월부터 개편하는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가 노후 연금 시장에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지금까지는 연 소득 3400만원 이하면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9월부터 2000만원 이하로 강화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을 월 167만원 이상 받고 있다면, 자녀 직장보험 피부양자에서 바로 탈락해 지역 가입자로 전환된다. 피부양자 자격을 따질 땐 연금액 전체가 기준이다. 2021년 연금 소득이 2000만원을 넘었다면, 당장 9월부터 피부양자 자격을 잃고 안 내던 건보료를 내야 한다(4년간 경감)는 얘기다. 수도권에 아파트 한 채만 갖고 있어도 건보료는 월 30만원이 훌쩍 넘으니, 은퇴 후엔 상당히 부담되는 액수다.
100세 시대 연금 부자를 꿈꿨던 예비 은퇴자들은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특히 ‘연기 국민연금’은 앞으로 기피 대상 1호로 떠오를 전망이다. 연기 연금은 국민연금 수령을 1년 늦추면 7.2%씩, 최대 36%(5년) 더 지급해 주는 제도다. 하지만 연금액이 월 167만원을 넘으면 건보료 부담이 생기기 때문에 꺼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대구에 사는 은퇴 생활자 A(67)씨는 5년 전 연기 연금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그는 “늙어서 애들한테 손 벌리기 싫어 연기 연금을 신청했는데, 그 선택이 독(毒)이 됐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을 제때 받았으면 월 130만원이라서 문제가 없었을 텐데, 괜히 5년 늦춰서 월 177만원씩 받게 된 바람에 피부양자에서 탈락하고 월 35만원씩 건보료를 내게 됐다는 것이다.
반면 연금액이 최대 30% 깎이기 때문에 노후 생활이 어려운 은퇴자들이나 신청한다고 여겨졌던 ‘조기 국민연금’은 건보료 회피 대안으로 급부상하는 중이다. 자녀 직장보험의 피부양자인 B씨는 이달 중 조기 연금을 신청할 계획이다. B씨는 “3년 뒤에 정상적으로 국민연금을 받으면 월 177만원(연 2124만원)이라서 바로 피부양자에서 탈락하지만, 올해부터 앞당겨 받으면 연 1800만원 정도라서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피부양자 탈락 시 B씨가 내야 할 예상 건보료는 연 300만원. 그는 “노후에 연금만 갖고 살아가야 하는 은퇴자에게 건보료 300만원은 가혹하다”고 말했다.
현재 국민연금을 월 100만원 이상 받고 있는 사람은 43만명이다. 건강보험 피부양자 탈락 여부에 따라 노후 생활 희비는 엇갈릴 수 있다. 가뜩이나 40만원으로 높아진 기초연금 때문에 국민연금에 대한 불만이 커진 상황이다. 건보료 때문에 억울한 은퇴자들이 더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