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 /로이터 연합뉴스

리즈 트러스 신임 영국 총리는 ‘제2의 마거릿 대처’를 지향한다. 9월 말 트러스 행정부는 대담한 경제 회생 방안을 발표했다. 에너지 대란 수습을 위해 기업·가계에 막대한 보조금을 준다고 했고, 5년간 450억파운드(약 72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감세안도 내놓았다. 경기 부양 의지가 담겨 있다. 세금 부담이 줄어 원자재 공급을 늘리는 투자가 이뤄지면 물가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고 봤다.

그러나 결과는 ‘자살골’이다. 영국 국채 투매가 벌어져 국제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졌다. 파운드화 가치는 역대 최저치로 추락했다. 줄어든 세수(稅收)를 벌충하려고 영국이 국채를 대량으로 찍으면 재정 파탄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공포가 커졌기 때문이다. 결국 열흘 만에 대규모 감세안을 철회했다. 때를 만났다는 듯 국내외 좌파 성향 언론은 감세안을 집중 타격했다. 부자와 기업에 세금을 깎아주는 정책이 경제를 망가뜨린다는 식의 맹폭이 가해졌다.

그러나 영국이 수렁에 빠진 건 감세 자체가 문제라서가 아니다. 빚에 허덕이는 나라 살림에 지나친 과부하를 줬다가 제 발등을 찍은 것이다. 영국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 채무는 2001년에는 33.9%였지만 2021년에는 102.8%로 급격히 늘었다. 정부가 20년 연속 적자를 봤다. 작년 한 해 재정 적자만 우리 돈으로 300조원에 달한다.

빚투성이 나라에서 재정 수입이 대거 줄어들 것이라는 예고가 나온 데다, 다른 분야에서 씀씀이를 줄이겠다는 대책도 내놓지 않아 전 세계 ‘큰손’들의 불신을 샀다. 게다가 달러 폭주 시대를 맞아 파운드화 체력이 바닥났다는 점을 간과했다가 역습을 당했다. 금리를 높이고 통화량을 줄이는 시기에 무모하게 반대 방향으로 내달렸다. 엉뚱한 타이밍에 지나친 규모로 감세를 하겠다며 과잉 의욕을 보였다가 사달이 난 것이다. 건강에 좋은 우유도 배 속이 더부룩한 날 많이 들이켜면 배탈이 나는 것과 비슷하다.

감세는 선진국에서 우파 정부가 약방의 감초처럼 내놓는 정책이다. 좌파 정부가 세율을 높이면 우파가 정권을 되찾아 다시 낮춰 놓는 시소 게임은 역사의 필연적인 흐름이다. 세계 각국이 기업 유치 경쟁을 벌이면서 2000년대 들어 선진국 법인세율은 추세적으로 낮아지고 있기도 하다. 글로벌 회계법인 KPMG 분석에 따르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 법인세율은 2006년 27.7%에서 2019년 23.2%로 하향 조정됐다.

영국의 헛발질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감세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평소 많은 나랏빚에 허덕이면 경제 위기가 다가올 때 꺼낼 수 있는 정책 범위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번 ‘파운드화 대란’에서 감세안은 영국 경제의 여러 고질병을 한꺼번에 노출시킨 방아쇠였을 뿐이다. 감세 자체가 죄악시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