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설이 증폭되고 있는 스위스계 글로벌 투자은행 크레디스위스./로이터 연합뉴스

유튜브에는 ‘동물의 세계’를 담은 영상이 꽤 많다. 물가에 나온 사슴들 가운데 무리를 벗어나 여유를 부리는 한 마리를 순식간에 악어가 물어뜯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제물은 강물 속으로 끌려 들어가고 나머지 사슴들은 혼비백산 도망간다.

요즘 글로벌 경제가 이런 약육강식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미국이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금리를 올리고, 달러가 다른 선진국 통화를 압도하며 불안감이 커졌다. 순간 방심하거나 한눈팔면 뜯어먹힐 위험이 커진다. 벌써부터 팔다리가 휘청거려 좌초 위기에 빠진 금융회사나 나라가 하나둘 나오고 있다. 여의도에서 일하는 대형 금융회사 임원은 “이번 위기가 과거 글로벌 금융 위기 수준까지 가지 않더라도, 덩치 큰 세계적 기업이나 적당히 잘사는 국가 하나는 거덜 내는 ‘저주의 잔치’를 치러야 마무리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글로벌 금융회사 중에서는 1856년 설립된 크레디스위스가 타깃이 됐다. 자산 건전성이 의심돼 ‘제2의 리먼브러더스’가 되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퍼졌다. 세계 각지의 ‘하이에나’가 몰려들어 이 회사를 흔들어놓고 있다. 지난 1월 9.58스위스프랑이었던 주가가 9월 말에는 3.83스위스프랑까지 수직 낙하했다. 뉴욕타임스는 “스위스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은행이 이제 ‘밈(meme) 주식’이 됐다”고 했다. 밈 주식이란 온라인에서 소문을 타 개인 투자자가 몰리는 종목을 말한다.

크레디스위스는 14년 전 글로벌 금융 위기 시절에는 “정부의 도움 없이도 수많은 경쟁 은행보다 위기를 잘 극복했다”며 월스트리트저널의 찬사를 받은 회사다. 신뢰를 쌓는 건 오래 걸렸지만 잃는 건 한순간이었다.

‘킹(king)달러’가 불러온 금융 불안이 가득한 시절이라 제법 잘사는 나라가 갑작스러운 위기에 내몰린 사례도 나오고 있다. 최근 영국 국채 투매와 파운드화 폭락 사건은 자만에서 시작했다. 영국 정부가 ‘우리가 뭘 해도 글로벌 투자자들은 변함없이 우리 국채를 사줄 것’이라며 우쭐거리다 국가 경제에 큰 상처가 났다. 세계 경제까지 흔들었다. 경계심을 풀고 물가에서 한발 더 내디뎠다가 악어 이빨에 상처가 난 사슴과 비슷하다. 20일 달러당 환율이 150엔을 뚫은 일본도 올해 엔화 가치가 30%나 하락해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엔화값이 추락해도 금리를 올리지 않고 지켜보고만 있어 일본인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우리 정부나 한국은행은 “1997년이나 2008년 같은 위기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적절한 수준을 넘어선 불안과 동요를 막을 필요는 있다. 그러나 외환 보유액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올해 무역 적자가 건국 이후 가장 많으리라는 불길한 신호도 적지 않다. 원화 가치도 올해 20% 넘게 빠졌다. ‘에이, 설마’ 하기에는 시절이 수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