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가마니가 태산을 이룰 겁니다. 야당이 책임질 겁니까.”
더불어민주당이 쌀 초과 생산분을 정부가 강제 매입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단독 처리한 지난 19일 농림축산식품부의 한 과장이 이렇게 말했다. 1970~1980년 농산물을 정부가 의무 매입했다가 생산이 급증하고 가격이 급락한 유럽을 40년 지나서 답습하겠다는 것이 한심하다고 했다. 1975~1987년 12년간 농산물 매입 및 저장에 들어간 유럽의 재정은 6배 급증했다. 하지만 농가 소득은 오히려 23% 감소했다. 품질 혁신보다 정부 지원에 기댄 결과였다. 농업을 지원한다는 간판을 내건 정책이 농민들에게 독이 됐다. 이후 유럽은 보조금 개혁을 통해 1980년대 농가 수입에서 40% 가깝던 정부 보조 비율을 2000년대 20% 선으로 낮췄다.
거대 야당이 밀어붙이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하면 40년 전 유럽에서 벌어진 일이 재연될 것이라고 농식품부는 전망한다. 정부가 다 사주니 농민들은 쌀 생산을 늘리고, 쌀 초과 생산량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올해 25만t에서 2030년 64만t으로 3배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의 쌀 매입 예산은 5600억원에서 1조4000억원으로 150% 급증한다.
쌀을 사들이는데 예산을 퍼붓게 되면 스마트팜, 청년 농부 육성 등 농업 혁신에 들어가는 돈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런 혁신을 위해 필요한 돈은 올해의 경우 1조6000억원 정도다. 농업 예산(16조원)의 10%다. 이 돈이 쌀을 사들이는 데 들어가면 혁신은 싹을 틔우기 어렵다. 농민 단체들은 콩·마늘·양파 등 다른 기초 작물도 정부가 의무 매입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만약 현실이 된다면 연간 예산은 1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그런데 다른 미래가 있다. 지속 가능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농업 분야에 지원을 집중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팜(지능형 농장) 도입을 꼽을 수 있다. AI(인공지능)가 작물 상태를 분석해 온도·비료·수분 등을 조절하고, 스마트폰으로 원격 관리도 가능한 기술이다. 스마트팜이 도입되면 단위 면적당 생산량은 34%, 농업 소득은 41%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K푸드 수출을 확대하는 데 예산을 쓸 수도 있다. 일본은 2010년대 정부가 수출액 연 1조엔(약 10조원)을 목표로 농산물 수출 촉진 전략을 세우고 민간과 협력했다. 일본 농산물을 아시아 전역으로 5일 내 배송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2012년 4500억엔이었던 농식품 수출이 2018년에는 9100억엔으로 두 배가 됐다.
남아도는 쌀가마니가 산처럼 쌓이게 하는 게 옳은지, 농업을 미래 산업으로 만들기 위해 예산을 쓰는 게 좋은지는 삼척동자도 알 만한 일이다. 거대 야당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