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위해서 바흐의 곡을 연주하겠습니다. 연주가 끝난 뒤에도 박수를 보내는 대신에 묵념으로 동참해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3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은 조금 특별한 장면에서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명지휘자 프란츠 벨저 뫼스트(62)와 빈 필 단원들이 모두 무대에 올라온 뒤에도 한동안 음악은 울려 퍼지지 않았다. 대신 이 악단의 단원 대표이자 제1바이올린 연주자인 다니엘 프로샤우어(57)가 마이크를 잡고서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바흐 연주가 끝난 뒤 단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1분여간 침묵을 지켰다. 한국 관객들도 박수 대신에 침묵으로 희생자들을 기렸다. 음악이 흐르는 공연장이 거꾸로 이날만큼은 정적(靜寂)을 통해서 하나가 된 것이다. 빈 필은 이태원 참사 소식을 접한 뒤 공연 직전 리허설을 통해서 바흐의 이 곡을 추모곡으로 연주하기로 했다.
‘G선상의 아리아’라는 제목으로 친숙한 바흐의 곡은 관현악 모음곡 3번 가운데 두 번째 곡이다. 이탈리아어의 ‘아리아’라는 제목처럼 본래 추모곡은 아니다. 하지만 작곡 의도와는 관계없이 후세에 망자의 넋을 기리는 곡으로 정착한 경우가 클래식에는 적지 않다.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 새뮤얼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 가운데 ‘님로드’ 등이 대표적이다.
‘현을 위한 아다지오’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존 F. 케네디 대통령, 아인슈타인의 장례식에서 실연과 방송을 통해서 흐른 뒤 지금은 추모곡으로 더욱 친숙해졌다. 2001년 9·11 테러 직후에도 영국 런던 음악제 ‘프롬스’에서 희생자를 기리는 의미로 이 곡을 연주했다. 말러의 ‘아다지에토’ 역시 1968년 로버트 케네디 미 상원의원의 장례식 때 레너드 번스타인의 지휘로 연주된 이후 추모 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이태원 참사 이후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던 정부의 결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한다. 다만 이 기간 동안 무더기로 취소되는 문화 행사와 공연들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코로나 이후 모처럼 되살아나기 시작한 문화 예술계에 또다시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는 차라리 부차적이다. 그보다 우려스러웠던 것은 슬픔을 드러내는 다양한 방법을 스스로 옥죄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본래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감정들을 대신 드러내고 전달하는 것이야말로 예술이 지니고 있는 힘이다. 그런 예술의 치유력을 봉쇄하면 자연스럽게 표출되어야 하는 감정마저 막히거나 억눌리는 예기치 못했던 결과를 낳는다. 빈 필의 추모곡을 들으면서 예술의 역할에 대해 새삼 곱씹게 된다. 망자의 넋은 진혼(鎭魂)하고 산 자는 마땅히 위로받아야 한다. 거기에 필요한 것이야말로 음악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