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적자를 내고 있다는 한국전력 주가가 뜻밖에도 지난 두 달 새 30%나 뛰었다. 연말 증시는 칼바람 겨울 날씨보다 더 얼어붙었는데 기세 좋게 오르고 있다.
한전 주주들에겐 희소식일지 모르지만, 우리 경제 전체로 볼 땐 그렇지가 않다. 올해 30조원 넘는 사상 최대 적자가 예정된 한전을 살리려면 전기 요금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고, 요금 올리면 실적이 개선될 테니 투자자가 몰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도 전기료가 20%나 올랐다. 한전은 이탈리아(인상률 107%)나 영국(89%), 일본(36%) 등에 비해 요금을 많이 못 올렸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내년에는 연료비 인상 등을 감안해 올해보다 3배는 더 올려야 한다는 계산서를 뽑아놨다. 이대로라면 내년에 4인 가구 기준 매월 1만5800원씩 더 내야 한다. 연간 19만원 가까운 돈이다. 한 번에 전부 올리지 않고 나눠서 올린다고 해도 어쨌든 내년에 깜짝 놀랄 만한 고지서가 날아올 것임엔 틀림없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점이다. 전기 요금은 모든 제품 생산 원가에 반영된다. 물가 잡느라 올 한 해 금리를 대폭 올려 대출자들 비명이 가득한데, 물가가 재차 자극받을 위기다. 물가상승률이 6%대에서 5%대로 안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공공요금 인상 억제 속에 나타난 착시 효과일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기 요금 1% 인상은 전체 물가를 0.0155%포인트 밀어올리는 효과가 난다. 한전 요구만큼 전기 요금이 오르면 물가는 0.5%포인트 넘게 오르게 된다. 이러면 한국은행은 금리를 내릴 수가 없고, 경제는 장기간 고금리·고물가에 고통받아야 한다.
이 때문일까. 정부는 다른 물가 상승 요인을 억제하려고 여기저기 바쁘게 손을 대고 있다. 보험사들은 실손보험 상승률을 한 자릿수로 줄였고, 자동차 보험료는 2% 내렸다. 통신 요금도 ‘중간요금제’를 신설하는 방법으로 요금을 세분화해 사실상 요금 내리는 효과를 내겠다고 한다. 기준금리 인상 속에서도 은행들은 대출 금리를 내리고 있다.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물가에 부담 주는 요인을 하나씩 때려잡는 모양새다. 그래서 수익이 줄어들게 될 이런 업종들 주가는 한전과는 반대로 가고 있다. 경제에 왜곡이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시장에 생긴 구김살은 오래간다.
한전은 부족한 운영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올해 한전채를 29조원어치나 찍었다. 다른 기업은 채권시장에서 돈 구하지 못할 만큼 자금 시장에서 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돼버렸다. 자금 시장에 돈줄이 말라붙을 정도였다. 이것도 경제에 구김을 만들었다.
탈원전 한다고, 탈원전 해도 전기 요금 올리지 않아도 된다고 우기면서 전기 요금 인상을 눌러온 문재인 정부 5년이 만들어낸 뒤끝들이다. 참으로 방대하고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