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이 시민단체 등 민간에 지원했던 국고 보조금을 전수 조사하겠다고 지난달 28일 발표했다. 부처 중에서도 여성가족부는 민간 보조금을 많이 지급하는 곳 중 하나다. 지난해 2700여 개 단체에 총 3900억원을 지원했다. 최근 여가부의 민간 보조금 사업 중 ‘양성평등 및 사회참여 확대 공모 사업’이 논란이 됐다. 지원금을 받은 A사단법인 대표가 소셜네트워크에 공산주의를 추구한다고 쓴 점을 한 국회의원이 지적했다. 여가부는 설명 자료를 내고 “(해당 사업은) 민간 전문가 등이 사업 수행 역량, 적합성 등을 평가해 선정했다. 미흡함이 있어 현장 점검을 나갔었다”고 했다. 현장 점검까지 했으니 문제가 없는 걸까.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이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비영리 민간단체 보조금 현황과 향후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뉴시스

여가부 담당 과장에게 점검 결과를 문의하니 구체적 내용은 잘 모른다며 공모사업을 담당한 양성평등교육진흥원(양평원) 직원을 연결해 줬다. 여가부 산하 양평원은 여가부가 민간 단체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사업 상당수를 맡고 있다. 논란이 된 ‘양성평등 및 사회참여사업’으로만 올해 15개 단체에 2억3100만원을 지원했다. 이 가운데 A법인은 20~30대 여성들이 직장에서 겪는 성희롱·성폭력 문제에 대해 의견을 모으고, 일상에서 느끼는 폭력 관련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이를 알리는 캠페인을 하겠다고 지원해 1800만원을 받았다. 양평원은 6월에 중간 점검을 나가서 계획한 사업이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는 걸 발견하곤 제대로 진행하라고 독려한 뒤 9월에 다시 현장 점검을 나갔다고 한다. 이미 지원금은 3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모두 지급된 상태. A법인은 최근 양평원에 최종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양평원 담당자는 “계획한 내용을 제대로 진행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했다.

하지만 양평원이 확인한 건 그들이 제출한 ‘숫자’ ‘행사명’ 정도였다. A법인은 커뮤니티 모임 41회, 작은 영화제, 북콘서트, 강연 등에 총 246명이 참가했다고 보고했다. 기자가 “커뮤니티는 온라인이냐, 오프라인이냐” “커뮤니티에서 구체적으로 뭘 했나” “영화제는 어떤 영화를 관람했고, 몇 명이 참가했나” “참가자는 2030 여성들인가” “북콘서트는 어떤 책으로 진행했으며, 몇 명이 참가했나” 물었는데, 양평원 담당자는 제대로 답을 못했다. 세금이 제대로 쓰였는지 알려면 확인해야 할 기본적 내용도 안 물어보고 문제 없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그러면서 담당자는 기자의 문제 지적에 “여성들이 직장 성폭력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건 중요하다”고 했다. 여성 성폭력 문제가 중요하면 세금이 허술히 쓰여도 괜찮다는 건가. 1800만원짜리 사업 하나만 들여다봐도 정부 관리가 이런 수준인데, 지난 5년간 민간단체에 뿌려진 보조금 22조4649억원을 찬찬히 살펴보면 얼마나 문제가 많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