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소송법 199조는 ‘판결은 소가 제기된 날부터 5월 이내에 선고한다’는 내용이다. 2·3심은 기록을 받은 날로부터 5개월 이내에 선고하도록 돼 있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의 모습. 2020.12.8/뉴스1

우리 법은 ‘~할 수 있다’는 재량과 ‘~한다’는 의무를 명확히 구분한다. 그런 면에서 ‘5월 이내 선고’는 재량이 아닌 의무 사항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1999년 이 규정을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인 ‘훈시 규정’으로 해석했다.

면죄부를 받은 ‘재판 지체’는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후 더욱 심해졌다. 민사 1심은 5개월을 넘긴 사건이 3년 연속 50%를 넘어섰다. 선고는커녕 첫 재판조차 열리지 않는 사례도 많다. 1년 넘게 재판일을 통지받지 못한 한 변호사는 “두 번이나 기일지정 신청서를 냈지만 소용없었다. 법원에 찍힐까 봐 더 채근하기도 어려웠다”고 했다. 그사이 그의 의뢰인은 사채를 써가며 회사를 운영했다.

판결 선고를 앞두고 재판부가 도망치다시피 하는 경우도 속출한다. 작년 12월에 선고 예정이던 한 사건은 갑자기 2월로 선고일이 연기됐다. 막상 2월이 되자 재판부는 인사이동으로 떠나버렸다. 새 재판부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 변호사는 “2월까지 선고 예정인 사건이 13건이었는데 그중 3분의 1이 그 지경”이라고 했다. 판결문 쓰기 싫은 사건들은 인사이동 때까지 미루다 떠나는 게 일상화된 것이다.

직무유기에 가까운 재판 지체는 최근 2~3년간 더욱 심해졌다. 승진제 폐지로 근무 평가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기 때문이다. 법정 기간 5개월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심지어 선거 재판은 공직선거법에 ‘강행규정’이란 제목하에 1~3심까지 각 6개월 내에 ‘반드시 하여야 한다’고 돼 있지만, 1심만 3년 2개월째 하는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처럼 해당 울산시장이 임기를 채우고 퇴임하는 일도 생겨났다.

일반인들이 법에 정한 기간을 어기면 어떻게 될까. 거액의 빚이나 이미 결혼한 사실을 속인 ‘사기 결혼’을 당한 경우라도 이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이 단 하루라도 지나 소송을 내면 재판은 시작하지도 못하고 소송이 각하된다. 억울하게 해고된 근로자가 ‘해고일로부터 3개월’이 지나 구제 신청을 하거나, 평생을 해로한 부부가 ‘혼인 해소일로부터 2년’이 지나서 재산 분할 청구를 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법원이 국민에게는 법을 엄격히 해석하면서 자신들에게는 너그럽다면 사법 신뢰는 추락한다. 법정 기간 5개월이 지나치게 짧다면 그 기간을 현실화해서라도 강제력을 확보해야 한다. 일부 판사들의 직무 유기에 가까운 행태에 대해서는 인사 불이익을 줘야 한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말해 온 ‘좋은 재판’이 재판 뭉개다 인사 때 도망가는 판사들이 속출하고, 재판 지체로 사채 빚 얻어 쓰는 국민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면 반드시 있어야 할 조치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