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디’는 이란의 공용어인 페르시아어로 자유를 뜻한다. 이란 수도 테헤란에는 ‘자유’란 이름의 대형 경기장이 있다. 2009년 2월 남아공 월드컵 최종 예선을 취재하려고 찾았던 아자디 스타디움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장소다.

지난 2022년 9월 20일 이스탄불 이스티크랄 거리에서 이란 이슬람공화국 도덕경찰에 의해 테헤란에서 체포된 뒤 숨진 여성 마흐사 아미니를추모 지지하는 시위가 열린 가운데 한 시위대가 마흐사 아미니의 초상화를 들고 있다. /AFP 연합뉴스

한국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들어서자 10만명이 빼곡히 들어찬 관중석에선 천둥 같은 야유가 쏟아졌다. 투명 아크릴 판으로 대충 막아놓은 기자석엔 까다 만 땅콩 등이 날아들었다. 경기는 박지성의 막판 동점골로 1대1 무승부로 끝났고, 한국 기자들은 성난 이란 팬들을 뒤로하고 부리나케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수많은 축구장을 다녀봤지만 아자디의 풍경이 특히 생경했던 이유는 10만 관중이 모두 남성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이란 당국은 이슬람 율법에 따른다며 여성의 축구장 출입을 금지했다. ‘자유’라 명명된 스타디움은 결코 여성에겐 자유롭지 않은 그런 곳이었다.

그러다 이란은 2019년 10월, 카타르 월드컵 예선 때 여성들의 축구 관람을 허용했다. 38년 만의 일이었다. 아자디 스타디움에 입장한 3000여 여성 팬의 사진을 보면서 이란도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섣부른 판단이었다. 작년 9월 스물두 살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붙잡혔다가 의문사한 뒤 이란 전역에선 6개월 넘게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신정 체제에서 억압받는 여성들이 ‘여성, 삶, 자유’란 구호를 내걸고 시위 최전선에 나섰다.

이란은 15~24세 여성의 문해율이 98%로 이슬람 국가 중에서 높은 편이지만, 15세 이상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14%로 세계 최하위권이다. 똑똑한 젊은 여성들이 공정한 기회를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미니의 죽음은 여성들의 분노를 촉발시켜 거리로 나서게 했다. 히잡을 벗어 던진 소녀들은 교실에 붙은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사진에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비겁하고 악랄한 보복이 가해졌다. 이란 전역에서 10대 여학생들을 겨냥한 독극물 테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인권 단체 HRAI에 따르면, 최소 290개 학교에서 7000여 명이 호흡 곤란과 신체 마비 등의 피해를 입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여성이 주도하는 시위에 불만을 품고 벌인 보복성 공격이란 추정이 나오는 가운데 이란 정부는 반체제·외부 세력을 테러 배후로 지목하며 책임을 돌리고 있다. 한 현지 매체는 “일부 여학교에선 이란 혁명수비대가 학생들에게 강간 행위 등이 나오는 포르노 영상물을 억지로 보게 한 뒤 ‘반체제 시위는 이 같은 성적 타락으로 이어진다’고 주입시킨다”고 보도했다. 끔찍한 일이다.

국제사회는 이런 야만적인 행위를 더 두고 봐서는 안 된다. 지난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이란 소녀들도 ‘아자디’를 누릴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