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MBC 예능 ‘복면가왕’에는 음주 운전으로 한동안 모습을 감췄던 가수 호란이 출연했다. “세 차례 음주 운전 이력이 있는 사람을 출연시켰다”며 제작진을 향한 비판이 쇄도했다. 방송에선 그가 복면을 벗고 얼굴을 보여주고 있을 때, 화면 하단 3분의 1 정도 높이로 ‘조만간 공연으로 만나뵙겠습니다’ ‘무대에서 다시 만나요’라고 커다란 자막까지 나갔다. 이는 MBC가 음주 사고로 물의를 빚은 가수의 복귀를 위해 길을 터준 것처럼 비치기에 충분했다.
이날 대전에서 음주 운전 교통사고로 초등학생이 사망했다. ‘복면가왕’에 연이어 방송된 뉴스데스크는 주요 뉴스로 ‘만취 차량에 9살 초등생 참변’ 보도를 내보냈다. MBC는 2분 26초짜리 리포트에서 어린이들이 있는 인도로 차량이 돌진하는 사고 장면 CCTV 영상을 네 차례 보여줬다. 끔찍했다. ‘인명 피해 발생 장면의 지나치게 상세한 묘사에 신중을 기하라’고 한 방송 심의 규정에 부합하지 않는다. 음주 운전 전력 연예인의 화려한 모습을 보여준 직후, 특유의 자극적 리포트로 음주 운전 사고의 문제점을 방송하는 모습이 혼란스러웠다.
MBC 출연자들의 음주 운전 경력을 둘러싼 문제 제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월 TBS(서울교통방송)에서 MBC로 옮겨 저녁 라디오 ‘뉴스 하이킥’을 진행하는 신장식씨도 음주 및 무면허 운전 전력자다. TBS 시절 김어준과 함께 편파 방송 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인물. MBC노조(제3노조)는 그에 대해 “2006년 음주 운전, 2007년 두 차례 무면허 운전 등으로 형사처벌을 받고 2020년 총선에서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를 사퇴했다”며 교체를 요구하고 있지만, 사측은 묵묵부답이다.
MBC는 최근 안형준 사장 선임 과정에서 ‘도덕적 위기(moral hazard)’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안 사장이 자신의 고교 후배인 유명 드라마 PD가 10 년 전 맡긴 방송기술 관련 벤처기업 주식 수억원어치를 차명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투서 내용이 공개된 것. 방송문화진흥회는 “사장 지위에 영향을 줄 정도의 결격 사유가 아니다”라고 했지만, 신임 사장의 도덕성에는 큰 흠결이 났다. 그가 MBC를 제대로 ‘운전’할 수 있을까.
MBC뿐만이 아니다. 케이블TV CJ ENM은 과거 오디션 프로그램 시청자 투표 결과를 조작해 실형까지 살고 나온 제작진을 최근 재입사시켰다가 비판을 받았다. 연예인들의 생사여탈권을 손에 쥔 방송사들이 음주 운전, 도박 등으로 물의를 빚은 일부 연예인을 몇 년 정도 지난 뒤 방송에 복귀시키는 것은 방송계의 고질적 관행. 그러다보니, 범법을 저지른 제작진의 복권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방송 종사자들로 이뤄진 단체나 일부 노조의 성명서 같은 것을 보면, 정의·공정 등 훌륭한 말[言]을 앞세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제작 현장에서 이런 공적(公的) 가치는 자주 뒤로 밀리고, ‘우리 편’끼리 봐주는 경우가 더 많은 것 아닌가. 결국 시청자들이 눈을 더 부릅뜨고 감시하는 수밖에 없다. 정의나 공정은 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