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는 6.25 전쟁에 참전해 전투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 트위터

메이저리그 마이애미 말린스의 교타자 루이스 아라에즈는 올 시즌 대기록에 도전 중이다. 4일 현재 그의 타율은 0.388. 현대 야구에선 좀처럼 범접하기 어려워 ‘신(神)의 영역’이라 통하는 4할 달성 여부에 시선이 쏠린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출범 원년인 1982년 백인천이 유일한 4할 타자(0.412)로 남아 있다. 87년 역사 일본 프로야구엔 4할 타자가 없다. 본고장 미국은 1900년 이후 13명이 나왔는데 가장 최근에 달성한 이가 ‘마지막 4할 타자’로 불리는 테드 윌리엄스(1918~2002)다.

1941시즌 최종전 더블헤더를 앞두고 윌리엄스는 4할로 공식 인정되는 타율 0.39955를 기록하고 있었다. 마지막 두 경기에 빠지면 4할의 영광이 저절로 찾아오는 상황에서 당시 감독은 배려차 그를 선발 명단에서 제외하려고 했다. 그러자 윌리엄스는 “0.39955는 정확히 4할은 아니다”라며 출전을 강행했다. 그는 그날 8타수 6안타를 때려내며 4할 6리라는 역사적인 타율로 시즌을 마쳤다.

거칠 것 없었던 그를 멈춰 세운 것은 전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징집 대상이 된 윌리엄스는 1942년 미 해군에 입대해 3년 넘게 복무했다. 주로 비행 교관 임무를 수행하며 실전에 투입되진 않았다. 1946년 빅리그로 돌아와 두 번의 MVP를 받는 등 최전성기를 보내던 그는 1952년 5월 배트를 또 놓았다. 이미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예비군임에도 6·25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입대를 신청한 것이다. 전장으로 떠나는 그를 위해 보스턴 레드삭스는 송별 행사를 열었다. 6·25전쟁에서 다쳐 휠체어를 탄 병사가 참전 용사들이 마련한 선물을 하나씩 건네자 윌리엄스는 목이 메었다고 한다. 그는 그날 1952시즌 유일한 홈런을 때렸고, 팬들은 그의 마지막 홈런일지도 모른다며 눈물을 훔쳤다.

윌리엄스는 포항에 주둔한 미 해병대 제311해병전투비행대대에 배치됐다. F9F 팬서 전투기를 몰고 39회 출격해 사선을 넘나들었다. 1953년 2월엔 평양을 폭격하던 중 적 대공포에 맞아 온통 구멍이 난 전투기를 수원 공군 기지에 겨우 동체착륙시켰다.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폐렴을 얻고 달팽이관을 다친 그는 전쟁 말기에 결국 비행 부적합 판정을 받고 전역했다.

그해 8월 그라운드로 돌아온 윌리엄스는 7년을 더 뛰었다. 전문가들은 두 번의 참전 공백이 없었다면 그가 역대 최다 타점의 주인공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는 “많은 이가 내가 6·25전쟁에 뛰어든 것에 대해 안타깝다고 얘기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깨닫고 있다. 난 죽을 때까지 자랑스러운 미 해병대원”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국가보훈부는 7월의 ‘6·25 영웅’으로 윌리엄스를 선정했다. 야구팬을 떠나 한국인이라면 테드 윌리엄스는 기억하면 좋을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