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떨어진 두 나라는 인종·종교·언어가 판이하지만 공통점도 적지 않다. 찬란한 문명사를 가졌고, 한국인도 즐겨 찾는 관광지라는 점이 그렇다. 암흑의 근현대사를 겪고 20세기에 왕정을 복고해 입헌군주국 틀을 갖춘 점도 그러하다. 스페인과 캄보디아 얘기다. 두 나라가 차기 집권 세력을 뽑는 총선을 같은 날(23일) 치렀다. 비슷한 역사적 궤적을 가진 두 나라의 선거 분위기는 딴판이었다.
스페인 총선 키워드는 ‘혼돈’과 ‘불확실’. 제1 야당 중도 우파 국민당이 136석으로 1위가 됐지만, 독자 정권을 꾸릴 수 있는 과반에 40석 모자랐다. 집권 중도 좌파 사회노동당은 122석으로 2위로 밀려났지만 차이는 크지 않다. 소수 정파와의 협상에 따라 5년 전 총리 불신임안 가결로 정권을 내줬던 국민당이 권력을 찾을 수도 있다. 프랑코 철권통치 시절 40년 동안 활동을 금지당했던 사회노동당이 정권 재창출에 성공할 가능성도 남아있다. 정부 구성 협상이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혼돈 속에 재선거라는 극단적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한 정파에 쏠리지 않은 민심을 반영해 차기 정부 구성 과정에서 불확실성은 차츰 제거될 것이다.
캄보디아 총선거의 키워드는 ‘답정너(답은 정해져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와 ‘핵노잼(몹시 재미없음)’. 이 나라 총선은 입헌군주제를 표방한 국가 선거 중 가장 예측 가능한 선거로 꼽힌다. 언제나 집권 세력 압승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38년째 집권 중인 훈센 총리가 이끄는 캄보디아인민당이 125석 중 120석을, 친정부 성향 당 푼신펙이 나머지 다섯 석을 가져갔다. 투표를 앞두고 정권에 비판적인 야당(촛불당·옛 구국당) 인사들에게 투표 용지 훼손 행위 등의 책임을 물어 출마를 원천 봉쇄하고,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관영 매체들과 소셜미디어를 동원해 투표를 독려했다. 선거 때마다 비슷하게 반복된 패턴이다. 훈 센은 선거 후 정권을 아들 훈 마넷 육군 대장에게 넘기고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외신은 이를 훈센 총리 시대 폐막이 아닌 훈센 상왕 시대의 개막으로 본다.
유권자 입장에서 ‘혼돈’과 ‘핵노잼’ 선거 중 어떤 게 바람직할까? 불확실과 불안이 초래되더라도 투표 행사를 통해 국정 운영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혼돈’에 한 표를 주고 싶다. 한국도 경험해왔고 경험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단점인 동시에 장점이다. 캄보디아의 ‘핵노잼 선거’가 끝난 뒤 미국과 중국의 상반된 반응도 눈에 띈다. 미국 국무부는 “이번 선거는 자유롭지도 공정하지도 않았다. 민주주의를 훼손한 이들에게 비자 발급 제한 등 대응 조치를 취했다”고 발표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훈센에게 보낸 총선 승리 축전에서 “캄보디아가 자국 국정에 부합하는 발전의 길을 걷는 것을 지지한다. 중국과 캄보디아는 운명 공동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