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케냐 정부가 대서양 너머 1만2000㎞ 떨어진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에 경찰관 1000명을 파견할 의사가 있다고 최근 밝혔다. 갱단 횡포로 무정부 상태가 된 아이티가 국제사회에 치안 유지 도움을 요청한 데 답신한 것이다. 케냐가 이런 선택을 한 배경은 당장 알려지지 않았다. 국제사회에서 공헌의 대가를 기대했을 수 있다. 그러나 아이티가 흑인 노예들이 백인 식민 세력을 무력으로 물리치고 건국한 나라라는 상징성에서 동질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아이티는 1804년에 독립국으로 첫발을 내디뎠지만, 219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치안이 불안한 나라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외세와 치열하게 싸워 ‘자주독립’을 이뤄내고도 나라 사정은 오히려 나빠진 여러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지금도 여러 나라의 수난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7일 아이티 수도 포르투 프랭스의 한 대피소에 갱단의 폭력을 피해 모여든 주민들. 아이티는 최근 조직폭력배들의 난동으로 치안 기능이 사실상 마비되면서 국제사회에 지원 인력을 파견해줄 것을 요청했다. 케냐가 최근 경찰 1000명을 보낼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AP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하는 이슬람 무장 단체 탈레반은 15일 재집권 2년을 맞아 자축 성명을 내고 “어떤 침략자도 독립과 자유를 위협하는 일은 일절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탈레반 역시 외세를 이겨낸 자주독립을 강조했지만, 이들이 어떻게 기존 정부를 무너뜨렸고 그 치하에서 아프간인, 특히 여성들이 어떻게 사는지 국제사회는 충격 속에서 생생히 지켜봐 왔다.

유엔 산하 기구들은 16일 북아프리카 수단 사태에 공동성명을 내고 “상황이 통제 불능으로 치닫고 있다”며 국제사회의 관심을 호소했다. 영국에 맞서 1956년 독립을 이룬 수단은 내전과 쿠데타, 폭정이 되풀이되는 혼란 속에서 2019년 과도정부를 세웠지만, 지난 4월 발발한 내전 때문에 암흑기로 뒷걸음질쳤다. 스페인 치하를 벗어나 1830년 독립국이 된 에콰도르는 고질적 이념 대결과 정정 불안을 극복하지 못했고, 이달 초 대선 후보 피살로 더욱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1960년 프랑스에서 독립한 니제르에서는 힘겹게 닻을 올린 민주 정부 대통령이 최근 경호실장 주도 쿠데타로 축출된 뒤 반역죄로 처벌받을 상황이다.

이처럼 외세와 식민 통치를 이겨낸 나라들은 정치 혼란과 경제난이라는 더 큰 장애물을 좀처럼 넘지 못하는 양상이다. 한국도 광복 직후 다를 바 없었다. 극심한 이념 갈등 속에서 분단됐고,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으며, 총성이 멎은 뒤에도 혹독한 정정 불안기를 거쳤다. 그랬던 나라가 지금은 신생국의 본보기이자 경제·문화 강국이다.

혼돈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위기 때 결단 내린 지도자, 혼연일체가 된 국민이 함께 일궜다. 그런 한국 사회에서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은 출발부터 떳떳하지 못한 나라라고 여기는 자학 사관론자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광복절과 정부 수립일이 있는 8월이 유독 그렇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각국의 안타까운 수난사는, 역으로 대한민국이 이룬 성취가 얼마나 값지고 특별한지 증언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