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연합뉴스

현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유난히 많은 출판계에서, 대한출판문화협회(이하 출협)은 드물게 이념보다 실용을 우선하는 단체로 꼽힌다. 출협의 윤철호 회장을 지난 28일 만났다. “기사를 쓰지 않아도 좋으니 이야기만이라도 들어 달라”고 했다. 최근 문체부와 갈등에 관한 얘기였다.

문체부와 출판계의 갈등이 불거진 건 지난 5월 문체부가 세종도서 선정·구입 지원사업 개편안을 발표하면서부터다. 문체부는 담당 기관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방만 운영을 했다며 사실상 사업을 철회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대해 출협은 “예산 지원을 줄이려는 ‘꼼수’”라며 반발했다.

지난 7월 24일에는 박보균 문체부 장관이 직접 나서 언론 간담회를 열고 서울국제도서전 수익금 누락을 지적했다. 그 전달 열린 도서전 총예산은 약 40억원. 그중 7억7000만원이 국가보조금이다. 국가보조금을 받았으니 수익금을 반환해야 하는데, 이 일이 투명하게 이뤄지지 않았다고 문체부는 주장했다. 윤철호 회장은 “경비 지출 내역을 영수증 한 장까지 증빙 자료를 만들어 보고했다. 수익금 범위에 대한 협의는 아직 이뤄진 적이 없는데 뭘 누락했다는 건가”라고 했다. 출협은 당시 반박 자료를 내고 “시대에 뒤처지고, 대결적 사고에 빠진 박보균 장관을 해임하라”고 반박했다. 문체부는 지난 3일 윤 회장과 주일우 서울국제도서전 대표를 경찰에 수사 의뢰했고, 2주 뒤인 17일엔 출판인 500여 명이 용산 문체부 서울사무소 앞에서 궐기대회를 열었다.

독자와 출판산업 모두를 위한 문화예술을 위해 시간을 써도 모자란 판에, 이 무슨 소모전인가. 앞서도 말했듯 진보 좌파가 주류를 이루는 문화예술계에서 출협은 드물게 이념보다는 ‘실용’을 추구하는 단체다. 지난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김건희 여사가 축사를 하게 된 것을 놓고 일부 좌파 출판인들이 불만을 제기하자 출협은 “대통령이 도서전에 관심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출판산업 발전에 도움이 된다”며 진정시키기도 했다. 그나마 새 정부가 함께 새로운 문화 정책을 펼 수 있는 세력이자 단체라는 의미다. 해마다 정부 보조금을 줄여갈 만큼 자립도를 키운 서울 국제도서전의 노력을 보며, 정부도 좀 더 실용적이 될 수는 없었을까.

윤 회장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고 즐기는 ‘축제’를 비리의 온상인 양 모욕한다는 사실이 가장 가슴 아프다”며 “앞으로 정부 보조금을 받지 않고 출판인들이 독립적으로 서울국제도서전을 꾸리겠다”고 말했다. 도서전 비리 여부는 수사를 의뢰했으니 곧 밝혀질 것이다. 세종도서의 방만 운영이 있다면 상급 기관인 문체부가 감사에 나서 바로잡으면 된다. 한 국가의 문화 행정 최우선 순위는 문화산업을 발전시키고, 분투 중인 예술가의 사기를 높이는 일이 아닐까. 출판산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