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프를 두른 그녀들의 눈빛에서 승리에 대한 결의가 보였다. 빨간 유니폼과 하늘색 코트 벽은 선명한 대비를 이뤘다. 이달 초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홈페이지에 소개된 항저우 아시안게임 아프가니스탄 여자 배구팀의 모습이다. 아프가니스탄 여성 스포츠 선수들의 별칭은 ‘나는 천사들(Flying Angels)’이다.

2년 전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 단체 탈레반에 장악된 아프가니스탄이 23일 개막하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선수단을 보낸다. 국제사회에서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는 탈레반의 의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수들의 활약은 경제난과 압제에 신음하고 있는 자국 동포들에게 잠시나마 희망을 안겨줄 것이다.

이달 초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홈페이지에 올라온 아프간 여자 배구팀 모습. IOC와 OCA에 따르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17명의 아프간 여성 선수가 참가할 예정이다. 그러나 최근 탈레반 관계자가 외신 인터뷰에서 이같은 사실을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 /OCA 홈페이지

선수들이 어떤 성적을 거둘지, 탈레반 정권이 국제사회에서 공인받지 못한 상황에서 어떤 깃발과 팀 이름을 들고나올지도 궁금하지만, 최대 관심사는 출전이 예고된 ‘천사들’이 무사히 항저우 땅을 밟을 수 있느냐다.

아프간 국가올림픽위원회는 지난 6일 배구·육상·사이클에 여성 선수 17명이 참가한다고 발표했다. 처음으로 단체 종목인 배구에 참가하면서 여성 선수 숫자도 아시안게임 역대 최대 규모가 됐다. 요누스 포팔 아프간 올림픽위원회 사무총장은 “수많은 도전에도 불구하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OCA·국제배구연맹·아시아배구연맹이 굳건히 지지해 줘 여성 선수들이 조국을 대표할 수 있게 됐다”고 국제사회에 감사를 표했다.

그러나 여성 선수 참가 발표 직후 탈레반 관계자가 외신 인터뷰에서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표선수단 133명은 전원 남성으로 구성된다”며 아프간 올림픽위 발표를 전면 부정했다. 이미 2년 전 아프간을 점령했을 때 “예전 같은 여성 탄압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음에도 여성들을 학교와 직장에서 몰아내며 헌신짝처럼 약속을 뒤집은 그들이기에 자칫 천사들의 날개가 꺾일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IOC는 15일 홈페이지에 아시안게임 배구 예고를 내보내면서 아프가니스탄 여자팀의 첫 경기(30일 항저우 사범대 체육관·대카자흐스탄)가 포함된 전체 일정도 공개했다. 아프간 여성 선수들의 참가를 관철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IOC는 정부가 국가 올림픽위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을 심각한 위법 행위로 간주한다. 며칠간 이 문제를 두고 탈레반과 국제사회에서 치열한 기 싸움이 전개될 것 같다.

코로나로 연기돼 5년 만에 열리는 이번 아시안게임에는 40여 국 선수들이 메달 수확에 나선다. 예정대로 아프간 여성 선수 17명이 포함된다면, 아시아를 넘어 지구촌이 한마음으로 성원할 것이다. 그들의 날개가 꺾이지 않도록 국제사회가 목소리를 낼 때다. 페달을 밟고, 트랙을 누비며, 네트 너머 서브를 보내는 ‘천사’들의 모습은 재난과 분열로 얼룩진 지구촌에 작지만 분명한 희망의 메시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