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뉴스1

얼마 전 한 시사프로 진행자는 ‘인요한 혁신위’의 ‘영남 중진 험지 출마론’에 대해 방송을 하다 “국민의힘 동일 지역구 3선 이상 의원들을 보니 제가 아직 공부가 덜 돼서 그런지 몰라도 모르는 의원들이 좀 있다”고 했다.

국회의원을 12년씩 하고 있지만 여야 정치인을 매일 인터뷰하는 진행자가 보기에도 누군지 모르겠는 의원들이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힘의 동일 지역구 3선 이상 22명 중 12명이 ‘공천=당선’인 영남 지역 의원들이다. 국힘 전체 영남 의원은 56명으로 국힘 지역구 의석의 63%에 달한다.

사실 국회를 취재하는 정치부 기자들이 보기에도 “이런 의원이 있었나?” 싶은 영남 의원들은 한둘이 아니다. 이들 대부분이 중앙 정치보다는 지역 활동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보장되기 때문에 평소에도 당내 경선을 대비해 지역민들의 야유회 버스에 올라 마이크 잡고 얼굴 비치는 ‘텃밭’ 다지기에 매진한다. 그러다 보면 3선, 4선 선수는 쉽게 쌓이지만 일반 국민 눈에는 처음 보는 얼굴도 많다.

의정 활동 초점이 공천에만 맞춰 있다 보니 지역 체육대회, 음식 축제, 노래 대회 등 각종 행사 참석에만 매달리는 의원도 많다. 국힘 고참급 당직자들은 횡단보도를 설치하고 전봇대 뽑는 걸 민생 치적으로 홍보하는 의원들을 보며 “왜 국회의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구의원, 시의원이 해도 될 일을 똑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단 공천만 받으면 별다른 정치적 외풍 없이 당선이 쉽기 때문에 당이 위기라고 해도 누구 하나 내 일처럼 나서지 않는다. ‘선당후사’를 입에 달고 살지만 부산 하태경 의원이 서울 출마 선언을 한 지 한 달이 되도록 당은 조용하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영남 주류 의원들의 희생을 요구하자 “인 위원장이 선거를 알면 얼마나 아느냐”는 반응부터 나오는 게 현실이다.

당 일각에서는 “국힘 의원들이 탄핵을 겪어봐서 그런다”는 말이 나온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을 경험한 뒤 ‘대통령은 죽어도 의원들은 계속 살더라’는 집단 교훈을 얻었다는 것이다. 내년 총선에서 지면 현 정권이 ‘식물 정부’가 된다는 것을 모두가 알지만, 나만 의원 배지를 한 번 더 달면 야당 의원이 된다 한들 의원직 유지에는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총선 지면 식물 정부가 되는데 그걸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다”며 “나라도 살아야겠다는 엑소더스가 당내에 친윤부터 급속히 퍼질지도 모른다”고 했다. 인 위원장은 “살려면 모두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 아는데 실천을 안할 뿐”이라고 했다.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은 정치권의 오랜 격언이지만 이를 실천하는 정치인은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