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이 친구들과 ‘서울의 봄’을 보고 왔다. 아이들까지 ‘재밌다며? 우리도 한번 보자’고 달려들 정도니, 1000만 영화의 저력을 새삼 실감했다. 영화계에 오래 몸담았던 한 지인은 관객 1000만을 넘기려면 500만쯤 되는 시점부터 두 번 세 번 보는 사람들이 나와야 하고 청소년들까지 가세해 하나의 ‘현상’이 된다고 했는데 그대로였다. 게다가 이 영화는 12세 관람가로 연령대를 낮춰 겨울방학 ‘초딩 관객’들 장사도 꽤 되는 모양이었다.
영화를 보고 돌아온 저녁, 아이는 들떠 있었다. 반란군에 맞서 작전을 펼치는 군인 모습이 멋있더라고 했다. 극 중 이태신(정우성)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아이에게 극 중 인물의 모델은 고(故) 장태완 장군인데 실제론 행주대교나 광화문에 부대를 끌고 나간 적은 없다고 이야기해 줬다. 신군부가 정권을 잡은 뒤에는 공기업 대표도 하고, 훗날 야당 국회의원도 했다고 들려줬다. 일종의 팩트체크를 해준 셈이다. “아빠, 나도 영화랑 실제는 다른 걸 알아요.” 무심하게 말하는 아이 모습에 안도했다. 그렇지만, 영화 속 허구가 그 작은 머릿속에 사실처럼 자리 잡지는 않을지 계속 경계하며 지켜볼 생각이다.
미국 학계에서 영화 속 역사가 기억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실험이 있었다. 대학생들에게 ‘아마데우스’ ‘라스트 사무라이’ 같은 역사적 배경을 가진 영화 여섯 편의 일부 장면을 보여 주고, 동영상 속에서 잘못된 부분을 지적한 문서를 읽게 했다. 일정 기간이 경과한 뒤 시험을 봤더니, 놀랍게도 참가자의 3분의 1이 영화 속 잘못된 내용을 사실(fact)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를 정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영상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기억은 쉽게 오염됐던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2015년 ‘영화 속 사실이 이기는 이유(Why movie ‘facts’ prevail)’라는 기사에서 이를 소개하며, 영화 속 역사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영화라는 장르는 끊임없이 이를 방해하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은 역사 해석의 권한을 놓고 헤게모니 싸움이 치열한 곳이다. 특히 현대사 분야에서 영화계는 그동안 매우 적극적인 플레이어 역할을 해왔다. 이 영화 이전에 ‘화려한 휴가’(2007) ‘남영동 1985′(2012) ‘택시운전사’(2017) ‘1987′(2017) 등의 긴 리스트가 이미 존재한다. 마치 전국민을 상대로 영화를 통한 ‘기억 실험’을 벌인 형국인데 1980년대를 다룬 영화가 유독 많다.
일단 영화로 만들어지면,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사실의 변형이나 드라마적 요소의 가미는 불가피하다. 영화는 이 과정에서 가차 없이 역사를 희생시키거나 훼손한다. ‘영화 속 허구는 실제 인물이나 사건과 연관이 없습니다’ 유의 문구는 별 효력도 없다. 허구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실제와 뒤섞이고, 한 시대에 대한 ‘집단 기억’을 새롭게 재구성한다. 여기에 청소년들을 비롯해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던 세대까지 영화를 통해 당시를 유사 경험하고 있다.
이런 영화들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386 세대로 대변되는 특정 세대의 세계관은 이런 방식을 통해 문화적 유전자로 후세에 전달될 것이다. 요즘은 학교에서 민감한 현대사 이야기는 제대로 꺼내지도 못한다는데, 영화가 1980년대에 대한 역사 교육 현장이 된 셈이다. 다음 세대가 이들의 편벽한 세계관에만 노출되지 않도록 풍부한 문화적 자산을 남겨주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