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야당과 신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랬더라면 정말 무서울 뻔했다”는 말이 유행처럼 돌고 있다. 한 위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김건희 특검법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면 민주당과 전세가 역전되고 신당의 입지도 줄어들었을 것이라는 가정이다. ‘홍범도 동상 등 이념 정치를 청산하자’ ‘핼러윈 참사 피해자를 면담하겠다’ 같은 다른 ‘무서운 시리즈’들도 있다.
이는 야당과 신당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볼 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안도감에서 오는 일종의 조소다. 이들은 “한 위원장이 총선 때까지 계속 전국을 돌면서 ‘셀카’를 찍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한 위원장이 몰고 다니는 전국의 인파는 결국 국민의힘 지지층과 동원된 당원들이 모인 ‘그들만의 잔치’라고 평가절하하는 것이다.
60대 이상이 국민의힘을 지지하고 40대의 민주당 지지세가 강하다면 여권의 총선 승부처는 2030 세대와 중도층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2030에게는 ‘이준석 신당’ 등 이미 다른 선택지도 제시됐다. 이런 상황에서 한 위원장의 취임 일성은 여전히 민주당 비판과 운동권 청산이었다. 상당수 중도층은 “상대방에게는 가혹하고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서는 관대한 것 아니냐”고 받아들였다. 한 위원장 등판 전후 별반 변화 없는 여권의 여론 지형이 이를 보여준다.
지난 총선 직전 ‘문재인 정권을 지원해야 한다’는 여론은 ‘견제해야 한다’는 여론보다 10% 정도 높았다. 이는 민주당의 180석 기록적인 압승으로 이어졌다. 반면 총선을 석달 앞둔 최근에는 ‘윤석열 정권을 견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지원해야 한다’는 여론보다 10% 이상 높은 반대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여권은 “총선에서 지면 윤석열 정부는 식물이 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정권이 식물 상태가 된다는데 과연 무슨 일인들 못할까 싶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일과 그럼에도 절대 바꿀 수 없는 것의 한계는 명확했다. 한 위원장은 ‘윤심 공천’ 우려에 “당을 이끄는 건 나”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내가 당대표”라고 밝혀야만 하는 현재 상황은 역설적으로 한 위원장을 둘러싼 정치적 현실을 상징한다.
이번 총선에서는 제3신당도 나오는 만큼 민주당이 지난 선거처럼 압도적 의석을 가져가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여권이 지지층만 결집해도 양당 의석 차가 21대 국회보다는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때 가서 여권의 누군가는 “졌지만 잘 싸웠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역시 ‘졌잘싸’가 내심 목표였던 작년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다. 전국을 순회하는 한 위원장의 신년 인사회 일정은 17일로 끝이 난다. ‘정치인 한동훈’에 대한 냉정한 평가의 시간도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