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사법 행정권 남용’ 사건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부당 합병’ 사건의 공통점은 법원이 방대한 기소 내용에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는 것이다. 공소장만 수백 장에 달해 ‘트럭 기소’로까지 불리는 대형 사건들에서 전부 무죄가 나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런데 판결문을 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기소 내용들이 보인다.
‘사법 행정권 남용’으로 기소된 박병대 전 대법관의 혐의 중에는 ‘형사사법절차 전자화 촉진법 위반’이 있다. 법 이름도 생소한 이 혐의의 내용은 그가 법원 내부망에서 고교·대학 동문인 A씨의 사건 진행 내역을 검색했다는 내용이다. ‘불법 전과조회’처럼 보이지만 법원은 검찰과는 달리 내부망 접근 권한이 폭넓게 허용돼 있다. 박 전 대법관은 상식적인 범위의 조언을 했고, A씨 사건이 자기가 속한 소부(小部)에 배당되자 사건을 회피하려고 하기도 했다. 법원은 “열람만 한 것은 처벌 대상이 되는 행위로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재용 회장에 대한 검찰 기소는 삼성물산은 저평가돼 있고 제일모직은 고평가돼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승계를 위한 합병을 강행했다는 전제에 기반한다. 2015년 3월 삼성증권 IB본부가 작성한 보고서에 삼성물산에 대해 ‘기업가치 대비 저평가된 주가로 투자 메리트가 매우 높은 상황’이라고 적혔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 IB본부가 미전실에 보낸 다른 보고서에는 ‘물산은 국내 주택시장의 호조세를 반영할 만한 프로젝트가 적어 수혜를 받기 어렵다’고 돼 있었다. 재판부는 앞의 보고서를 “삼성물산 주식을 매각하기 위한 ‘세일즈용’ 보고서”라고 했다.
검찰은 합병 이사회 전날 새벽 제일모직 김포 물류 창고에 대규모 화재가 발생했는데 이사회를 예정대로 진행한 것도 문제 삼았다. 제일모직 주가에 불리한 요소가 발생했는데 이를 애써 무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해액 2098억원 중 1818억원은 보험으로 전보됐고, 이사회를 미룰 정도의 사고는 아니다”라고 했다.
박병대 전 대법관의 ‘사건 검색’ 기소를 두고 법조계에선 본질인 ‘재판 거래’가 무죄가 날까 봐 끼워넣은 망신 주기식 기소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재용 회장에 대한 기소 또한 판단의 영역인 ‘물산 저평가’ ‘모직 고평가’를 확고한 원칙으로 전제하고 기업의 경영적 판단을 일일이 형사재판의 영역으로 끌고 온 결과다. 그에 대해 법원은 하나하나 따지면서 ‘전부 무죄’를 썼다. 그 결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판결문은 3200쪽, 이재용 회장 판결문은 1600쪽으로 전산에 등록되기도 힘든 양이 됐고 피고인들은 수년간 재판에 끌려다녔다.
두 사건의 ‘전부 무죄’에서 트럭 기소에 대한 법원의 달라진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절차적 위반 사항 한두 개라도 유죄가 났던 과거와는 달리 이젠 기소의 필요성과 타당성을 좀 더 정밀하게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부 무죄’에 대해 반사적으로 항소하기 전에 검찰이 한번쯤 짚어 봤어야 할 대목이다.